오늘 소개할 두 권의 책을 알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지난 주 한겨레 토요판 칼럼에서 문학 평론가 한 분이 <돈의 맛>을 칭찬했었습니다. 저는 <돈의 맛>을 별로 좋지 않게 본 편이라 무슨 얘기 하나 싶어 슬쩍 보았는데, 칼럼 말미에 이렇게 쓰셨더군요. 우리 문학에도 이런 작품이 있으면 좋겠는데, 물론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나 김이설의 <환영>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고요. 저는 당장 이 두 작품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백의 그림자>는 철거를 앞둔 도심의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연애 얘기로 이야기의 틀을 짭니다. 어설프게 시작된 그들의 연애는 점차 그들이 살아 온 신산스러운 삶과, 그들이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조명합니다. 그러면서 삶의 비애와 사람들 사이의 온기를 포착해내죠. 이 세상은, 이 도시는 말없이 잔인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또 하루를 살아낼 힘을 찾아내야 하니까요.

이 책에는 매우 독특한 그림자가 나옵니다. 주인의 삶이 궁지에 몰렸을 때 자체의 양감을 갖고 일어서는 그림자. 그래서 결국 주인을 절망과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그림자. 작가는 이런 판타지 요소를 통해, 자기 자신의 그림자만 들여다 보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손잡고 이 끝 모를 어둠을 함께 걸어가 보자고 제안합니다.

<환영>은 좀더 대중적인 내러티브를 구사합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무능력한 남편과 갓난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교외의 백숙집에서 종업원 일을 시작한 주인공은, 손님을 상대로 몸까지 팔면서 억척스럽게 살아남습니다. 나중엔 마음 잡고 건전한 일자리로 돌아 오지만, 친정 식구들까지 하나 둘 나타나 그를 수렁으로 밀어 넣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백숙집으로 돌아가게 된 그는 다시 시작합니다. 견디는 건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책을 두고 김기덕 영화 같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적나라하고 대책없는 상황이 이어지긴 합니다만, 실은 훨씬 건강한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혼자 살아남으려고 도망치지 않으면서, 계속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희망의 서사에 가깝죠. 김기덕의 영화는 자기 모멸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버릴 뿐이니까요.

대부분의 한국 소설들은 과거의 일들을 헤집으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든가, 아니면 현실을 직시하더라도 아무런 전망도 내놓지 못하는 우울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의 그림자>와 <환영>은 이런 한국 소설의 매너리즘을 깨고, 현실을 바로 보면서도 연대를 통해 변화를 모색하는 빛나는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