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주의하세요.
올 여름 최고의 화제작인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감독의 전작 <메멘토>를 생각나게 합니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이 가진 문제의 해결보다는, 비교적 단순한 규칙을 반복함으로써 창조한 미궁 그 자체가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주인공을 영원히 반복되는 세계 안에 가두어 버릴 정도로요.
영화는 시작부터 꿈 속의 꿈을 보여 주고, 코브가 깨어난 후의 행적도 일반적인 편집 방식보다 훨씬 많이 생략하며 건너뜁니다. 또한 사이토의 제안을 받은 후 작전 준비를 위해 만나는 사람들은 코브가 꿈에 갇혀 있다는 암시적인 대사를 한두 마디씩 꼭 던져주기까지 합니다. 이쯤 되면 관객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과연 현실일까? 또 다른 꿈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죠. 굳이 이런 의문을 불러 일으키면서까지 초반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코브의 ‘현실’이 결국 꿈에 불과하다는 결론 – 마지막 컷에서 코브의 토템은 쌩쌩하게 잘 돌아갑니다 – 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코브가 어떻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딛고 사이토의 지시를 완벽히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느냐 보다는, 오히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브는 여전히 꿈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에 관심이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렇게 되면 맬과의 악연에 대한 코브의 술회도, 그가 대사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인셉션 과정의 모든 인물들과 디테일들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의 주관적인 해설에 불과할 뿐 제3자에 의해 검증되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골치 아플 수도 있는 아이디어를 보완해 주는 것은 광대한 꿈 속의 스펙터클과 무한정의 시간 지연을 통해 극대화된 서스펜스입니다. 전세계에서 할리우드만 할 수 있는 돈질의 정수죠. 사실 놀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발한 착상은 높이 평가합니다만, 그가 시각적 상상력 면에서 특별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영화에서는 미술감독과 CG팀의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겠지요.
갖은 생고생을 다하고도 여전히 꿈 속에 갇힌 존재로 머물러야 하는 디카프리오의 운명. 다양한 컴플렉스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에, 갖가지 방어 기제와 자기 기만으로 존재의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되는 현대인들의 운명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