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2010) – 서스펜스가 사라진 폭로극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웹툰 <이끼>는 서스펜스를 극대화하는 컷 나눔과 인물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묘사로 높은 인기를 누렸던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영화화하기에는 플롯이 다소 약한 것이 흠이었죠. 강우석 감독이 영화화한다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습니다. 그의 전작들을 떠올려 볼 때, 원작을 보완하고 발전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 <이끼>는 안타깝게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원작을 비교적 착실하게 따라가면서 훌륭한 대사와 소재를 잘 활용하긴 하지만, 원작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변화를 준 부분은 원래의 것보다 못합니다. 영화에서 괜찮은 장면이나 대사는 모두 원작에서 그대로 따온 부분이고, 아쉬운 부분들은 원작과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면 거의 들어맞습니다.

원작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관객을 휘어잡을 만한 포스가 약했죠. 저는 비밀을 파헤치며 끌어가야 할 류해국의 캐릭터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프롤로그만 봤을 때는 기대가 좀 되더군요. 박진감있게 툭툭 치고 나가면서도 천용덕과 류덕형 캐릭터를 확실하게 잡아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제시된 과거의 사실이, 그 다음에 나올 류해국의 의혹과 충돌하며 아슬아슬한 서스펜스를 자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류해국의 등장과 더불어 완전히 무너집니다. 원작에서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류해국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공들였던 캐릭터 설정은 그냥 시늉만 하는데 그칩니다. 쓸데없이 끼어 들어간 대사들 때문에 인물들간의 감정대립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요.

그 결과, 관객들은 류해국의 정서와 선택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따라 다니게 됩니다. 캐릭터의 능동적인 선택에 반응하면서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캐릭터를 끌고 다니는 걸 구경하는 상태가 되는거죠.

결국 이 영화는 천용덕과 류덕형의 악연, 다른 인간을 도구로 사용할때 잉태되는 비극에 관한 이야기만 남아 힘겹게 모양을 유지합니다. 그것만 해도 어느 정도 재미는 있기 때문에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겠지요. 게다가 배급도 CJ에서 하니까 CGV에서 잘 틀어 줄 거고요.

오랜 기간을 두고 띄엄띄엄 보는 연재 웹툰과 두 시간 내외에 집중해서 봐야하는 영화의 차이를 생각한다면, 모호한 부분을 다듬고 플롯 구성에 신경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캐릭터의 매력이 사라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움직임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뀐다면 잘된 각색은 아니겠죠. 각색 작업에 시간 투자를 조금만 더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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