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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D. P. 라일 지음, 강동혁 옮김, 들녘 펴냄 (2017. 11. 30.)

 

미스터리 장르의 규칙은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그런 다음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요. 그는 범죄 현장의 증거와 다양한 조사 활동을 통해 누가, 어떻게,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논리적으로 밝혀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명백해지면 이야기가 끝납니다.

따라서 미스터리를 창작하려는 사람에겐 ‘어떻게 하면 사람이 죽는지’에 대한 지식이 필수입니다. 사람이 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천재지변의 결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살해된다면 총에 맞거나 흉기에 찔리기도 하고, 목을 졸리거나 독살당할 수도 있지요. 미스터리를 쓰고자 하는 작가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를 골라 인물을 죽게 하고, 그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을 설계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법의학 지식입니다. 아무리 기발한 방법을 떠올리더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황당무계한 설정임을 알면서도 계속 작품을 봐 줄 사람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 외엔 없으니까요. 누가 봐도 ‘말이 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작가들은 노력합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법의학 서적을 뒤지고, 인터넷 검색을 활용합니다. 주변에 아는 의사가 있다면 자신의 구상이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낸 정보가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특정 상황에 맞는 조언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나온 일반적인 법의학 서적이나 전직 국과수 검시관들의 회고록은 과거의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생각이라면 몰라도 세부 사항에 대해서까지 도움받기는 힘듭니다. 의사들에게 물어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미스터리 창작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은 바로 그런 창작자들의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입니다. 저자 D. P. 라일은 의사이자 현직 미스터리 작가로서, <로 앤 오더>, <CSI 마이애미>, <하우스> 등 유명 미국 드라마에서 자문 의사로 일한 인물입니다. 전미 미스터리작가 모임의 남서부 지부 소식지에 회원들의 질문에 대해 답을 달아주는 꼭지를 써 왔는데, 이 책은 그것을 엮은 것입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은 다루는 범위가 넓다는 것입니다. 외상성 손상부터 약물 중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을 알기 쉽게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에는 일반인이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지식이 꽤 많습니다. ‘알코올로 동사(凍死)를 막을 수 있나’, ‘전기 충격기를 실제로 맞으면 어떻게 되나?’, ‘미리 모아둔 혈액으로 사건 현장을 조작할 수 있나?’ 같은 질문들이 그것입니다.

또한, 관심 있는 분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한 편집도 돋보입니다. 주제별로 비슷한 것끼리 잘 모아 놓았기 때문에, 살인이 어떻게 벌어질지 큰 방향만 정해 놓은 상태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비교해 보기 좋습니다. 또한, 책 가장자리에 각 질문 꼭지의 제목을 작게 적어 두어서 사전 찾듯 책장을 훌훌 넘겨가며 관심 가는 내용을 확인하기도 쉽죠. 책 맨 뒤에 색인 역시 꼼꼼하게 잘 정리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저자가 질문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고민해 준다는 것입니다. 일단, 질문자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 중에서 사실에 부합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그런 다음, 어떤 요소를 조금씩 바꾸면 다른 방식으로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을 차근차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렇다고 사전이나 작법서처럼 딱딱한 원칙이나 정의를 나열하는 것도 아닙니다. 특유의 위트도 섞여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읽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다만, 10장에 소개된 검시 제도의 경우, 미국의 제도밖에 나오지 않아서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에 대응하는 한국의 검시 제도에 대해 각주 등을 통해서 간단하게나마 소개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은 몇몇 분들이 지적했듯이, 번역 제목이나 표지를 선정할 때 조금 더 마케팅적인 측면을 고려했다면 훨씬 더 주목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은 꼭 ‘미스터리 작가’만을 위한 것은 아니거든요.

미스터리 장르물을 보는 재미는 결국 작가와 머리싸움을 하는 데 있습니다. 범인이 누굴까, 탐정은 어떻게 해답을 찾을까, 무슨 비밀이 밝혀질까 등을 직접 추리해 보는 과정을 거치면서 독자와 관객은 특별한 재미를 느낍니다. 그럴 때 이 책에서 얻은 지식은 꽤 유용할 것입니다. 살인 사건 현장의 단서를 통해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볼 수 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풀릴지 앞서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평소 미스터리 장르를 섭렵해온 마니아층은 물론, 이 장르에 호기심을 가진 초심자들에게도 환영받을 만한 책입니다. 완전히 독파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저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가볍게 뒤적거리기도 좋고, 정보를 찾거나 궁금증을 해소해줄 만큼의 깊이도 갖추고 있으니까요. 어느 쪽이든 미스터리라는 광대한 세계를 탐험하는데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점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