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턴 2 Paddington 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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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수C&E

2018. 2. 8. 개봉

동물이 나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어린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취급을 받기 일쑤입니다. 실제로도 대부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교훈적인 휴먼 드라마인 경우가 많지요. 극장에 혼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나 보호자는 내키지 않는 영화를 억지로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패딩턴 2>도 자칫 그런 편견의 희생양이 되기 쉬운 영화입니다. 사람 옷을 입은 곰돌이 하나가 나오는 포스터만 봐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또 어디서 유치한 애들 영화 하나 만들었군’ 하고 지나칠 것입니다. 그러나 1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루시 숙모와 헤어져 런던의 브라운 가족과 살게 된 꼬마 곰 패딩턴은 숙모의 100세 생신을 맞아 멋진 선물을 드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가 고른 선물은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런던 명소 팝업북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 책의 가격은 너무 비쌉니다. 수중에 돈이라고는 동전 한 닢밖에 없는 패딩턴은 곧바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모으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 팝업북은 숨겨진 보물의 위치를 가리키는 일종의 지도였습니다. 이웃에 사는 유명 배우 피닉스(휴 그랜트)는 패딩턴을 통해 팝업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골동품 가게에서 그것을 몰래 훔쳐냅니다. 공교롭게도 근처를 지나가던 패딩턴이 도둑을 잡기 위해 뒤쫓지만, 도리어 누명을 쓰고 맙니다.

업그레이드된 웃음과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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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수C&E

전편의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속편이 호평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 나왔을 때의 신선함도 떨어지고, 직접적 비교 대상인 ‘형님’이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가끔은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등장할 때가 있는데, <패딩턴 2>는 그런 예로 들기 아주 적절한 작품입니다.

1편의 귀여운 사고뭉치 패딩턴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영화에 그가 나오는 것만 봐도 저절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아무리 황당한 실수를 저질러도 치명적인 귀여움을 발산하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보여 주니까요. 게다가 다른 사람이 두려워하는 일에도 용감하게 나서고, 누구 못지 않게 주변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기 때문에 더욱 기특합니다.

1편에 비해 코미디가 강화된 것은 2편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무성 영화 시절의 대가 버스터 키튼을 연상시키는, 기계 장치와 타이밍을 활용한 슬랩스틱 코미디, 그리고 가벼운 말장난 개그가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잘 짜여 있습니다. 이발소 보조에서 시작해서 창 닦는 일로 끝나는 패딩턴의 아르바이트 시퀀스, 교도소의 포복절도 에피소드들, 절정 부분의 기차 시퀀스 등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패딩턴은 늘 사람들의 장점을 알아봐 주고 기분을 북돋울 줄 압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했습니다. 브라운 가족이 그의 누명을 벗겨 주려 그토록 애쓴 것도, 교도소 식구들이 팝업북 절도범을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죠. 모두가 패딩턴을 위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함께 사는 지혜는 어디에서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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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수C&E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이없는 흠집 내기와 트집 잡기로 얼룩져 있습니다. 엊그제 개막한 평창 올림픽을 깎아내리다 못해 대놓고 반대하거나 조롱하는 사람들이 좋은 예입니다. 또다시 있을지 모를 민족의 비극을 막고 하나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는 노력에 대해, 없는 잘못도 부풀리고 ’우리는 이만큼 다르다’는 것만 강조하고 있지요.

이런 태도는 공동체의 선을 이루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물론 지난 9년간의 보수 정권이 그랬듯이,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을 위반하거나 다른 구성원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의견이나 취향의 차이일 뿐인 것을 과장하거나, 이에 기반한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행동입니다.

어떤 공동체든 구성원 각자의 생각이나 느낌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가지 다른 의견이 존재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각자의 주장만 펼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란 종은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서로의 차이점 대신, 우리 모두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공통점에 주목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지킬 것은 지키면서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유연한 태도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국가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 가족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딩턴이 브라운 가족과 살던 윈저 가든에서, 또 누명을 쓰고 들어간 교도소에서 보여준 것처럼요. 그는 비록 꼬마 곰이지만,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았고, 계층과 직업에 대한 편견없이 상대의 좋은 점을 알아볼 줄 알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일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른스럽게 말이죠. <패딩턴 2>를 단순히 어린이 영화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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