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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7. 개봉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연극 배우 출신의 호텔 주인과, 그의 여동생 및 젊은 아내는 우리 현실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위선자들입니다. 각각의 특징은 다음과 같지요. 자기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완고함, 진짜로 남을 용서할 생각은 없으면서 그저 자기 편하자고 내 탓이라고 하는 무신경함, 자선 사업을 주도하지만 그냥 자기 만족에 불과한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 기만.

이들은 서로 대립할 때는 상대방의 잘못을 짚어내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호텔 밖의 인물들과 교류할 때는 완전히 시대착오적이거나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냅니다. 어쩌면 이들은 셋이지만 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자기의 성채 안에서 하나마나한 고민을 고상하게 읊으며 지내는 그런 사람 말이예요.

감독은 이런 주인공들의 삶을 제3자의 시선으로 찬찬히 보여주다가 단 한 장면으로 그들의 세상을 무너뜨립니다. 주인공과 그 하수인에게 모욕당한 동네 세입자가, 주인공의 아내가 적선을 베풀 듯 가져다 준 막대한 금액의 지폐를 그대로 태워 버리는 장면 말입니다. 관찰자의 시선과 드라마틱한 설정이 충돌하며 강한 카타르시스를 빚어내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인 누리 빌게 제일란은 3번째 장편 연출작인 [우작](2002)이 칸에서 심사위원대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는 이후 터키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영화를 꾸준히 찍어 왔는데 – [기후](2006), [쓰리 몽키즈](2008),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 (2011) – 칸에서 매번 상을 받아갈 정도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세 작품 다 전작 만큼은 아니었지요. 서구의 시선으로 터키 사회의 겉모습만 비판하는, 서구 영화제 입맛에 맞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다릅니다. [우작]처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빈부 격차와 그 모순을 잘 씌어진 대화씬으로 풀어내거든요. 러닝타임은 길지만,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세련된 영화적 표현이 어우러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명성이 아깝지 않은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