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자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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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엣나인필름

2017. 8. 17. 개봉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공통적인 특징은 국가의 공적 자원을 대통령과 정권 핵심부의 사적인 이익 추구에 사용한 것입니다. 아직 그 전모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권력 핵심층 및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여러 가지 국책 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려 했다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른바 ‘사자방’ 비리, 즉 4대강 사업, 자원 외교, 방위력 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 각각 수십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혈세를 낭비했습니다. 박근혜 역시 자신의 최측근인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하여 자기 이익을 챙기느라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두는 바람에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지요.

공영 방송인 KBS와 MBC를 장악하여 정권의 나팔수로 만든 것은 그런 전횡을 부리기 위한 정지 작업이었습니다. 이 영화 <공범자들>은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공영 방송을 망가뜨린 숱한 공범들과 그에 맞선 언론인들에 관한 기록 영화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인사 난맥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강행 등 국민 여론을 거스르는 행보로 급격한 지지율 추락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환경을 바꾸기 위해 공영 방송부터 먼저 장악합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방송사 사장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바꾸고 그들을 통해 보도 내용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MBC와 KBS 노조는 제작 거부를 단행하는 등 투쟁에 나서지만, 방송사 측은 노조 핵심 간부를 해고하거나 징계하고 원래 업무와 상관없는 보직을 맡기는 등 탄압을 계속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굳이 이 영화를 또 봐야 하나 싶어 관람을 망설였습니다. 지난 9년간 수구 정권이 저지른 언론 탄압 사례들을 다른 언론 보도를 통해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제 교만이고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사실관계를 안다고 해서, 그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영상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정권에 의도에 맞게 공영 방송 뉴스의 보도 방향을 통제한 MBC와 KBS의 전임 사장 및 고위 임원들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이 MBC 해직자이기도 한 최승호 감독은 기회가 닿는 대로 이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인터뷰를 거부합니다. 답변하더라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궤변을 늘어 놓지요.

다른 하나는 정권의 공영 방송 장악 시도에 대해서 조직적인 저항을 이끌었던 MBC, KBS의 전직 노조 간부들 인터뷰입니다. 회사를 떠난 이들도 많고, 자신의 원래 업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하는 수모를 겪으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분 과거의 일을 담담히 회고하며 투쟁의 결과가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파업과 제작 거부 등의 투쟁이 가치 있는 일이었음을 재확인합니다.

남은 하나는 당시 상황에 근접해서 촬영한 생생한 동영상들입니다. 독립 미디어 활동가들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확보한 자료들이죠.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만 공영 방송 장악 시도와 그에 대한 저항을 접했을 뿐, 실제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던 일반 관객들에게 사건 당시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기회를 선사합니다.

이 영화는 모든 것을 한 편의 영화에 담으려고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시간대를 명시하며 일목요연하게 모든 사건을 요약 정리하려 들지 않지요. 대신,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부터 박근혜 탄핵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간의 공영방송 탄압 경과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서 보여 줍니다. 사장 교체로부터 시작된 공영 방송 장악의 결과가 세월호 사건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안일한 보도 태도로 나타났으며, 정권이 바뀌어도 초토화된 공영 방송의 현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 속 상황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한사코 인터뷰를 마다하는 방송사 간부들을 보며 쓴웃음과 함께 분노를 느끼게 되고, 해직당하고 징계받은 일들을 담담하게 증언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탄핵에 동의하는 정도의 건전한 상식을 지닌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보통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관객들의 반응이 제각기 다양하게 나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 달랐습니다. 시내 복합상영관의 작은 관이라 다른 관객들이 혀를 차고 탄식하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는 것이 다 들렸는데, 다들 비슷한 시점에 그러고 있어서 뭔가 은밀한 동지 의식 같은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런 식의 공감대 형성은 일반 상업 영화 중에서도 특급 흥행작을 관람할 때나 가능한 것이라 더 인상적이었죠.

사람들은 시류를 거스르며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남들 하는 대로 해야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특히 권력과 자본이 생존권을 위협하며 대세를 따르라고 압박하면 배겨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동시대인은 그런 이들의 무모함을 비웃으며 각자 자기 살길을 찾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러는 건 달걀로 바위 치기니까 때가 오기를 기다리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흘러 때가 왔을 때 역사의 기록에 남는 것은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들입니다. 그들 희생은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의 앞날을 비춰 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이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활동으로 대표되는 일제 강점기하 애국지사들의 행적, 해방 이후 지속해서 독재에 맞서 싸운 지식인과 노동자 및 서민 대중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시대의 어둠을 밝힌 등불로 기억됩니다. 이 영화에서 공영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서 싸운 언론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싸움은 공영 방송의 독립성 확보라는 결실을 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그 투쟁의 과정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공범자들>은 언론인들의 모습을 담았을 뿐이지만, 지난 9년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노조원과 그 가족들, 세월호 유가족 등 크고 작은 인권 유린과 노동 탄압에 항거했던 이들 말입니다. 우리가 탄핵 성공과 정권 교체에 들떠 잠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들의 희생과 눈물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이 영화가 더욱 가치 있는 기록물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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