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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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5. 25. 개봉

노무현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특유의 소탈한 걸음걸이와 카랑카랑하고 전달력 좋은 목소리입니다. 주위의 지적에도 ‘수십 년 동안 걸어온 걸 어떻게 바꾸느냐’며 굳이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음걸이와, 언제 어디서 들어도 명쾌하고 흔들림 없는 음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았던 그의 삶 자체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입니다.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을 중심에 놓고, 그 당시 함께 했던 여러 인물들의 증언과 다양한 자료 화면을 통해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을 그리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자료 화면 속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은 여전히 감동을 줍니다. 반칙과 불의에 대한 정직한 분노, 올바른 것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열정,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인간애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들은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만들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렇게 노무현 대통령을 큰 스크린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이 영화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일단 감독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호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삶 중에서 어떤 측면을 부각시킬 것인지 정하고, 그에 따른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보이질 않습니다. 특정 시기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정치 철학이나 승부사적 기질을 다루는 것도 아니며, 사적인 영역에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재조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2002년 민주당 경선 때의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그마저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역정보다는 노사모를 비롯해 그를 도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그러다가도 후반부로 넘어가면 대통령 퇴임 후에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회한과 미안함 쪽으로 방향이 바뀝니다.

이 영화에 쓰인 자료 화면들은 대부분 기존의 공중파 TV다큐나 웹 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영상물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언제 봐도 가슴 찡하고 전율을 일으키는 장면들이지만, 딱히 새로움은 없습니다. 똑같은 자료라도 색다르게 해석한다든지, 이제껏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노력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증언자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 주지만, 논리적인 맥락도 없고 영화 전체와의 연계성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몇몇 인터뷰 장면들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내용보다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증언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슴 아래까지 넉넉하게 잡아 주는 인터뷰용 바스트샷(bust shot)보다 훨씬 인물이 크게 잡히는, 클로즈샷(close shot)으로 잡은 증언자들의 모습은 극장 스크린에서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큽니다. 관객의 시선을 완전히 빼앗기 때문에, 정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음미할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극장 스크린은 TV나 컴퓨터 화면처럼 작은 화면이 아니라는 것을 샷 크기를 결정할 때 충분히 고려했어야 합니다.

증언자들이 격해지는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 준 것 역시 그리 좋은 선택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관심의 초점이 인터뷰 내용이 아니라 증언자 자신에게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이지, 증언자가 그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80년대 노무현 변호사를 담당했던 안기부 직원이나 변호사 시절부터 운전기사, 서갑원 전 의원처럼 이제껏 많이 주목받지는 못했으나 진솔한 이야기로 자기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일화를 돋보이게 해 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증언 역시 전체적인 맥락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배치된 것이 아니어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합니다.

<노무현입니다>는 우리가 유튜브 등을 통해 검색해서 볼 수 있는 기존의 영상물보다 질적으로 더 훌륭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극장에서 보는 영화인데도 말이죠.

하지만 어떤 일이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개봉 첫 3일만에 제작비를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흥행에 순항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할리우드에서 케네디나 링컨 같은 유명 대통령의 삶을 소재로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어 온 것처럼요.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극영화나 다큐멘터리 작업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서, 그의 삶과 정신 그리고 정치적 유산에 대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논의하고 기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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