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해리스

로버트 해리스를 알게 된 것은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유령작가>(The Ghost Writer, 2010) 때문이었습니다. 그해 베를린 감독상을 포함, 여러 영화제에서 상찬을 받았던 이 영화는 탄탄한 미스터리 구조를 가진 세련된 정치극이었죠. 로버트 해리스는 이 영화의 원작자로서 시나리오 각색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장르 소설 팬들에게는 인기 있는 작가였습니다. BBC 역사 다큐를 만들던 저널리스트 출신으로서 방대한 자료에서 건져낸 역사적 디테일이 살아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와 ‘키케로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로마사 3부작으로 이미 문명을 떨치고 있었거든요.

올해 초의 목표는 로버트 해리스의 전 작품을 다 읽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최신작 몇 권을 빼놓고는 거의 국내에 출간되어 있기 때문에 도서관과 중고 서점을 이용해서 대충은 다 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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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데뷔작 <당신들의 조국>(Fatherland)은 히틀러가 2차 대전에서 패전하지 않았음을 가정하고 쓴 가상 역사를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책 소개만 보면 지루할 것 같지만, 이 작품은 르 카레 풍의 스파이물 분위기가 나는 속도감 있는 미스터리 스릴러입니다. 데뷔작이라 그런지 비교적 장르 규칙에 매우 충실한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사람 목숨보다 이념이 우선하는 사회의 비극을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있지요. 저처럼 이 책으로 로버트 해리스를 시작하면 꼭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두번째 작품 <이니그마>(Enigma)는 암호 해독과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동료의 미스터리를 캐는 작품인데, 주인공이 공감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라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암호 해독 과정에 관해서도 앨런 튜링을 주인공 캐릭터로 내세운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본 상태였기 때문에 딱히 긴박감을 느끼기 힘들었고요.

세번째 작품 <아크앤젤>(Archangel)은 스탈린의 핏줄이 현대 러시아 시골 구석에 처박혀서 생존해 있었다는 가설을 모티브로 삼은,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입니다. 괴짜 역사 교수인 주인공 켈소의 모험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엔딩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반전도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러시아 현대사에 아주 약간의 관심만 있어도 쉽게 빨려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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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가 <폼페이>(Pompeii)인데 이것은 재작년에 개봉한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품으로, 화산 폭발 직전에 폼페이 지방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교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수도기사가 주인공입니다. 로마 최대의 발명품 중 하나인 상수도 시설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페이지가 아주 잘 넘어가는 전형적인 대중 소설입니다.

다섯번째로 나온 것이 바로 앞서 말한 <고스트 라이터>(The Ghost)입니다. 친미적인 정책으로 비난받다 사임한 전직 수상의 회고록 집필을 맡은 유령작가를 주인공이, 전직 수상이 어쩌면 미국 CIA가 심은 정보원일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을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와 국제정치계의 비정함을 생생하게 묘파한 것이 장점입니다.

여기까지가 올해 상반기에 읽은 로버트 해리스 작품들입니다. 아직 못 읽은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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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내에서 로버트 해리스의 인기를 올려 놓은 로마사 3부작이 있습니다.  이미 출간된 <임페리움>과 <루스트룸>에 이어 6년만에 내놓은 3부작 마지막 권 <딕타토르>가 마침 국내에서도 며칠 전에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로마 역사에 딱히 관심 있는 편은 아니라서 이번에는 좀 미뤄뒀습니다. <임페리움>을 시작했다가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될 것 같아서 넘겼지요. 좀 더 여유 있을 때 들춰 보려고요. 또한 천재 금융가의 몰락기를 다룬 <어느 물리학자의 비행>(The Fear Index)도 출간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읽다가 진도가 잘 안나가서 나중에 읽으려고 치워 두었습니다만.

이렇게 올해 상반기에 시도한 로버트 해리스 읽기를 정리해 봅니다. 비록 다 읽지는 못했지만 간만에 완성도 높은 미스터리 스릴러의 재미와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작품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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