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11월 21일 개봉
저희 가족 넷은 모두 <겨울왕국>의 열렬한 팬입니다. 저와 아내, 초등생 딸과 아들까지 모두 그렇죠. 이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래서 이번 2편이 개봉한 주말은 몇 년을 기다린, 작은 가족 행사가 열린 날이었습니다. 일정을 앞뒤로 빼서 간신히 4명이 함께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만큼 기대가 컸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저희의 기대를 배반한 작품이었습니다. 초등 2학년인 막내아들만 유일하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애초 예정보다 3년가량 늦게 공개된 이 작품은 ‘장고 끝에 악수’라는 말이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물론 전편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흥행은 잘됐습니다. 독과점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천만 관객을 달성했고 전편이 세운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기록을 다시 썼죠
하지만, 이 작품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요소들이 빠져 있거나 약화돼 있습니다. 대신 3D 상영관용으로 만든 뛰어난 시각 효과 장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전편에 대한 노골적인 추억팔이가 두드러지죠.
1편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엘사와 안나가 인생을 걸고 넘어서야만 했던 장애물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봉인할 것을 강요받아 온 엘사와 세상이 꾸며낸 사랑과 선의에 대한 환상 속에 살아왔던 안나는 자기 힘으로, 함께 연대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죠. 이런 두 주인공의 모습은 다양한 계층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또한 듣자마자 귀에 착 감기고 입으로 흥얼거릴 수밖에 없었던 뮤지컬 넘버들은 역대 디즈니 영화 중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렛 잇 고’ 뿐만 아니라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불리는 ‘사랑은 열린 문’을 비롯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족한 점’ 등등 영화의 핵심을 오롯이 잘 담아낸 사운드트랙이 돋보였죠.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매력 포인트를 찾기 힘듭니다. 2편의 중심 이야기라 할 수 있는 엘사의 정체성 찾기는 딱히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습니다. 특별한 능력, 의문에 싸인 조상의 과거, 문제의 해결에 이르기까지 ‘이건 내 문제야’라고 느낄 만한 부분이 없었죠. 엘사와 안나가 새로운 소명을 받게 되지만, 그 사실이 마음을 움직인다기보다는 ‘그래, 그러시겠지’라는 느낌이랄까요.
또한 뮤지컬 넘버 역시 기억에 남을 만한 노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중반부에 들어간 크리스토프의 솔로 시퀀스는 정말 눈 뜨고 봐주기 힘들었던 장면입니다. 80년대 팝 공연이나 뮤직비디오 스타일로 만들었다고 하는 이 시퀀스는 웃자고 넣은 장면 같은데 웃기지도 않고, 마치 프러포즈 같은 구태의연한 절차를 사랑과 결혼의 필수적인 절차인 양 못 박아 버리는 부정적인 기능까지 수행할 가능성이 높은 장면이었죠.
저희처럼 2편에 실망하신 분들이라면, 지난 6년간 두 번에 걸쳐 디즈니의 다른 장편 애니메이션 앞에 붙어서 소개됐던 겨울왕국 단편 영화들을 찾아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왕국 열기>(Frozen Fever)(2015)와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Olaf’s Frozen Adventure)(2017)는 공동체의 감동적인 연대와 사랑,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으로 1편의 감동을 차분히 되살리기 좋은 작품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