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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의 신작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발생과 그 수습 과정을 다룬 5부작 시리즈입니다. 미국에서는 올해 5월에 방영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사고 수습 과정을 주도한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가 남긴 육성 녹음 수기를 바탕으로 극화한 작품이죠.

체르노빌은 당시 기준으로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였기 때문에 그 수습 과정을 복기하는 것은 우리 관객들에게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2011년,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의 총량으로만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의 20%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이후 방사능 오염수 등이 지속적해서 누출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절대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사고입니다.

전대미문의 폭발 사고, 분투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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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가까운 시각, 체르노빌 발전소 통제실에서는 큰 폭발을 감지합니다. 곧 상황 파악에 나서지만, 설마 원자로가 폭발했을까 싶은 이들은 축소 보고를 이어갑니다. 소련 정부 역시 사건 자체를 숨기려고 하지만, 멀리 떨어진 스웨덴의 발전소에서 높은 방사능이 검출되고 미국 첩보 위성에도 현장 사진이 찍히면서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됩니다.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는 장관회의 부의장이자 연료동력부 장관인 보리스 셰르비나(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사건 현장에 투입되어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또 다른 과학자 울라나 코뮤크(에밀리 왓슨)는 관련자들을 만나 그날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내려 노력하죠. 그 밖에도 방사선 피폭을 감수하면서도 맡은 일을 해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정작 소련 정부 수뇌부는 소련의 국제적 위상과 체제의 완전무결함을 보여 주는 데 급급할 뿐입니다.

흔히 이런 소재로 영상물을 만든다고 하면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레가소프의 육성 녹음 역시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적이 있죠. 다큐멘터리는 사실관계를 요약해서 정리하고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장르이긴 합니다. 그에 비해 극영화의 장점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외적인 상황 묘사와 그 상황에 부닥친 인물의 내적 감정 묘사를 통해 관객이 받는 정서적 충격은 한층 높아집니다.

자기 몸이 어찌 되건 피해를 최소화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발전소 직원들, 일반 화재 사건인 줄 알고 투입됐던 소방관 남편이 참혹하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던 아내, 아무 보상도 없고 피폭당할 것이 뻔하지만 자기들이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우직하게 자기 일에 충실한 광부와 군인들. <체르노빌>은 이런 모든 인물들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증폭 시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합니다.

체르노빌 못지않은 후쿠시마 사고, 믿을 수 없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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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사건 사고가 나면 정부 당국자들은 흔히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실을 숨기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동물적 본능을 발휘하는 거죠. 정보를 통제해서 얼마든지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지위에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공동체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자기 한 몸 살자고 다른 사람의 희생을 발판으로 삼으면, 결국 모두가 공멸하게 됩니다.

체르노빌 사고에서도 그랬습니다. 초기에는 발전소 수뇌부가 사실을 축소 보고한 탓에 화재 진압에 나섰던 소방관들과 멋도 모르고 불구경을 했던 시민들은 심각한 피폭을 당해 모두 목숨을 잃습니다. 그러나 레가소프를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한 셰르비나 같은 관료들의 조치가 있었기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체르노빌>에 나오는 소련 정부처럼 후쿠시마 사고를 수습하고 관리해 온 일본 정부의 모습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명확하게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에 소홀했고, 사후에 방사능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도 미흡했으며, 후쿠시마 재건을 정권 홍보용으로 쓰는 데만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 스스로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나라임에도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한 대응은 이웃 국가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원인 제공을 했지만 최초 수소 폭발이 있기까지 24시간이 있었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은 분명히 누군가가 져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일본 검찰은 도쿄전력이나 정부 관계자 중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원전 사고 초기 주민 대피 등 보호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는 방사능 폐기물이 곳곳에 쌓인 땅에서 농산물을 재배하여 유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를 2020년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하죠. 또한 그간 축적된 방사능 오염수를 처치 곤란이라며 해양에 그냥 방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바로 옆 나라인 우리나라는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일본의 과학자와 정치가들이 인간의 양심을 회복해 자기들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을 기대하기엔 일본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나라로서는 주변 강국들과 공조하여 후쿠시마 문제를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제기하고 후쿠시마의 어이없는 실상을 알려 국제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체르노빌>에 나온 소련 정부도 주변 강국에 대해 나라의 체면이 깎이는 상황은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최근에 불거진 일본의 경제 제재에 대한 대응처럼 타협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자세로 강하게 일본의 변화를 요구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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