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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한글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자 체계입니다. 인간이 내는 거의 모든 소리를 글자로 표현할 수 있죠.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소리를 내는 과학적 원리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효율적으로 뜻을 표현하고 글자를 입력하기에 더욱 알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이 글자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완전히 자리 잡고 널리 통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과 평민의 글자로 사랑받았지만 한자에 밀려 업신여김을 받아야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일제의 탄압에 고초를 겪었죠. <말모이>는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 사전을 내려던 ‘조선어학회’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극장에서 기도 일을 보다 잘린 김판수(유해진)는 혼자서 남매를 키우는 아버지입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월사금이 밀려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전에 하던 소매치기에 나섭니다. 서울역에서 말쑥하고 돈 많아 보이는 남자의 커다란 가방을 점찍지만, 공교롭게도 그 남자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이었습니다. 가방에 든 것도 사전 편찬을 위해 모은 원고뿐이었죠.

참신한 소재와 이야기 구성은 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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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서 시대극을 만든다고 하면 볼거리와 스케일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나온 <동주>나 <박열> 같은 영화처럼 특정 개인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시대극은 많지 않은 편이죠. 그래서 <말모이>처럼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문제와 개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영화가 나온 것이 아주 반갑습니다.

더구나 다른 영화에 비해 실제 사건에 대한 자료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짜임새 있는 서사를 만들어낸 것도 칭찬할 만한 부분입니다. 잘 짜인 플롯을 바탕으로 초반에 깔아둔 복선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회수하는 과정이 깔끔하고 설득력 있습니다. 최근에 나온 다른 한국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더 나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애초의 의도대로 영화가 잘 만들어지진 않았다는 겁니다. 우선 초반부를 이끄는 주인공 김판수에게 감정 이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관객이 캐릭터에 감정 이입하려면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판수는 솔직히 중심 캐릭터로서 매력이 부족합니다. 노력보다 보상을 적게 받았다거나 실력이나 수완은 있는데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더 좋았겠죠. 하지만, 그는 늘 큰소리만 치며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의 숨겨진 인간적 장점 역시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게 아니라 감방 동기였다는 조선생(김홍파)의 입으로 뒤늦게 설명되는 식이죠. 그러다 보니 초반 에피소드들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나마 판수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중반부에 들어서면 인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편집입니다. 어떤 부분은 너무 호흡이 바쁘고 어떤 부분은 생각보다 타이밍이 늦는 등 전반적으로 완급 조절이 잘 안 된 느낌입니다. 이야기와 감정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한 편집점을 찾기보다는 135분에 이르는 상영 시간이 더는 길어지지 않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렇게 뭔가 매끄럽지 못하고 덜컹거린다 싶으면 영화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과 열 사람의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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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눈에 띄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는 깊이 음미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노력은 몇몇 엘리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영화 전반에는 이른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함을 보여 주는 일화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죠. 김판수를 비롯하여, 살면서 한 번도 자신이 쓰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기꺼이 우리 말을 지키는 데 발 벗고 나서는 장면들은 가슴을 울립니다.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하는 일에 높은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독선에 빠지기 쉽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다고 착각하기 쉽고, 자기와 다르단 이유만으로 타인을 이유 없이 악마화하거나 깎아내리게 됩니다. 이 영화 초반의 류정환처럼요.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옳고 똑똑해도 인간이 아무 잘못 없는 다른 인간을 멋대로 재단할 자격은 없는 법입니다.

우리가 훌륭한 이상을 갖고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소수의 깨어있는 사람들의 존재는 중요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같으니까요. 하지만, 등불의 온기는 주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전해집니다. 누구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죠. 거기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등불의 온기를 전해보기도 전에 선입견을 갖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합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앞장서는 것만큼이나 주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힘을 합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죠. 불가능했던 ‘말모이’가 결실을 맺은 것은 모두가 조금씩 힘을 모았기 때문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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