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4 Grey’s Anatomy Season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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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추수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가족 및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우리네 풍습이었죠. 농경 전통이 있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와 비슷한 명절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명절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가족의 화합을 다진다는 명절의 의의를 되새기는 대신, 형식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가족으로서 전혀 교류가 없다가 명절에만 만나려니 어색하고 어려울 수밖에요.

어색하고 불편한 명절을 보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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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에도 마음 한구석 불편함을 느꼈을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미국 드라마가 한 편 있습니다.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14번째 시즌입니다. 제목만 듣고 ‘이거 아직도 하나?’라고 반문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2005년에 첫 방영을 시작했을 때는 한국계 배우 드라 오가 주연급으로 출연하면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이후에는 미국 드라마 팬이 아닌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좀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에서 방영 중인 저녁 황금 시간대 드라마 중에서 <성범죄수사대: SVU>와 를 제외하면 이 드라마보다 더 오랫동안 시청자들과 만난 작품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KBS에서 시즌 6화까지 방영했으며, 다른 시즌도 케이블 방송 및 스트리밍 서비스 등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뛰어난 외과 의사 메러디스 그레이와 그 동료들의 사랑과 성장을 다룬 이 드라마는 의학 드라마라기보다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애정 관계, 등장인물을 하차시킬 때마다 사용되는 과장된 사건 사고 때문에 국내 팬들 사이에서 ‘미국판 막장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쉽게 빠져드는 이야기 전개,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가진 매력 때문에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습니다.

특히 이 드라마는 백인 남성 중심의 미국 드라마 시장에 균열을 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 공중파 황금 시간대 드라마로는 최초로 여성, 유색 인종, 성 소수자를 주연급 캐릭터로 등장시켜 미국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적으로 성숙해지고 직업인으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충실히 담아내면서 더욱 폭넓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게 된 시즌 14에서는 이런 특징이 더욱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 메러디스 그레이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내일을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됩니다. 다른 시즌에 비해 ‘막장 드라마’라고 부를 만한 요소도 적고, 드라마를 떠나게 될 캐릭터에게도 충분한 예우를 해줬다는 점에서 무척 만족스러운 편입니다.

특히 여성이 겪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등장인물들이 조금씩 나눠 짊어지고,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 것이 돋보였습니다. 사랑, 직업적 성공, 건강, 가족과의 관계, 가정 폭력, 종교적 신앙, 자녀 양육 등 인생의 전 영역에 걸친 고민과 함께, 미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의 성과까지 담아냅니다.

이렇게 특정한 사건 사고가 중심이 아니라, 누구나 삶 속에서 겪는 보편적인 문제를 차근차근 짚어 나가기 때문에, 이전 시즌을 못 본 사람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드라마를 다 보진 못했고 중간중간 놓친 시즌들도 있었는데, 약간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등장인물들에 대한 핵심 사항만 복습하는 정도만으로 재미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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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겐 어려울 때 기댈 수 있고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우가 많은 가족은 그런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상과 담론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해서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지만 남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힘을 주기는커녕 앞길을 막거나 발목을 잡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가족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명절 연휴가 고통스러운 이유도 어쩌면 가족에 대한 기대가 비정상적으로 높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핏줄이기만 할 뿐 진심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할 준비가 안 돼 있는데, 가족 행세를 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가족은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 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일 뿐입니다. 꼭 그들에게서만 이해와 존중과 사랑을 구하란 법은 없습니다. 가족보다 더 나은 친구, 애인, 직장 동료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만약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가족인데 이런 것도 안 하나’라는 원망이 아니라, 먼저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14번째 시즌에는 그런 깨달음으로 가득합니다. 등장인물들은 가족 때문에 고통받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그들은 동료 의사나 환자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가운데 자신이 받은 상처를 다독이고 더 나은 내일을 꿈꿀 용기를 내게
됩니다. 명절을 지내면서 가족 문제 때문에 받은 상처가 있다면 이 드라마를 통해 마음을 추스를 기회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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