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 2 Incredibles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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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인크레더블>은 2004년에 개봉한 픽사의 애니메이션입니다. 더는 슈퍼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살 것을 강요당한 슈퍼히어로 가족의 활약을 다루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 봐도 독특한 그림체와 유머 감각, 과감한 액션 장면들이 돋보였죠. 가부장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을 비틀어 놓은 것도 좋았습니다.

14년 만에 돌아온 속편 <인크레더블 2>는 전편의 결말 부분에서 곧바로 연결됩니다. 도시의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적과 맞닥뜨린 인크레더블 가족은 가까스로 도시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슈퍼히어로를 관리해온 당국은 더는 그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상황에서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일라스티걸 부부는 갑부 남매 윈스턴과 이블린으로부터 슈퍼히어로의 명예를 되찾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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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크레더블> 시리즈의 감독 브래드 버드는 장편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로 데뷔한 이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연출을 맡기도 하는 등 애니메이션과 극영화 양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감독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사람들의 고정 관념에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외부 세계의 다른 존재를 무조건 적대시하는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감동적인 작품이었죠. 픽사에서 작업한 또 다른 작품 <라따뚜이>도 그렇습니다. 요식업계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쥐’에게 요리 재능을 부여하고, 쥐가 만든 요리가 사람의 마음을 감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인크레더블> 시리즈에서는 가족에 대한 고정 관념이 뒤집힙니다. 1편에서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전형적인 가부장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아내 일라스티 걸을 비롯한 가족 모두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이번 2편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부장제 하에서 굳어진 부부의 성 역할 구분을 서로 맞바꿉니다. 게다가 자식이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거꾸로 부모를 위험에서 구할 수도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명확히 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정도의 비틀기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영화가 가족 단위 관객을 노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확실히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특히, 설정만 기발하지 주제 면에서는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보다 보수적이었던 픽사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회사의 영화는 언제나 주인공이 지냈던 사랑이나 우정의 가치를 재발견하거나, 가족의 회복을 경험하는 식으로 귀결됩니다.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악당 캐릭터나, 주인공의 오판으로 인한 일탈 행동이 큰 악재로 작용하지만, 이것을 극복하면 다른 문제는 그대로 봉합되고 기존의 가치는 더욱 공고한 지위를 얻는 식이죠.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들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이나 <니모를 찾아서>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여기서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은 언제나 ‘미국 서부 해안 지역 중산층 백인 남성의 관점’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수는 있어도 사랑이나 우정에 대한 고전적인 믿음, 가부장적 가족주의나 전통적인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절대 의심을 하지 않죠. <업>, <인사이드 아웃>, <코코> 등은 주인공의 성별, 나이, 인종이 다를 뿐 가족을 다루는 방식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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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에 비하면 <인크레더블> 시리즈는 기존의 픽사 영화와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악당이 문제를 일으키고 그것을 해결하는 전체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외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족 관계가 내포한 모순을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족 간에 정해진 역할이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회 활동을 하며 돈을 벌고, 아버지가 집안 살림을 책임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간섭과 통제는 과도한 것일 수 있고, 보호받아야 존재라고 생각했던 아기가 최고의 초능력자일 수도 있죠. 이 영화가 북미 박스오피스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장편 애니메이션이 된 데에는, 이렇게 가족 관계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쾌감을 선사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 가족주의의 진화, 미국 사회가 변했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보편적인 호소력이 있습니다. 가족 관계나 그에 준하는 인간관계는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니까요. 할리우드 영화가 가족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은 보수적인 가치를 퍼뜨리기 위한 어떤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는 이야기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외부의 위협에 맞서 주인공이 가족을 구하려 노력한다’라는 설정이 아주 많이 등장합니다. 8, 90년대에는 이런 영화들이 지키려는 가족이란 ‘가부장제와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백인 가정’이었습니다. 주인공 백인 남성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는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여 점차 다양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혼 가정, 미혼 부모, 다인종 결합,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이 등장하게 됐고, 가족 내의 불화를 주요 테마로 삼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 가족주의의 대명사로 취급받는 디즈니의 영화들도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확실히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대신 보다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와 흔히 생각하는 ‘정상’ 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도 다루기 시작한 것이죠. <라푼젤> 이후 등장한 디즈니의 여성 캐릭터들은 자아실현이 포함된 독립적인 여성 영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리틀 프린세스 소피아> 같은 TV 애니메이션에는 어머니의 재혼을 통해 왕족이 된 소녀가 주인공입니다. <인크레더블 2>에 나온 가족의 모습은 디즈니의 최근 행보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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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렇게 할리우드는 관객층의 성향이 변하는 것을 발 빠르게 따라잡고 그에 맞는 영화들을 내놓을 줄 압니다. 최근 들어 페미니즘 이슈를 다룬 영화가 늘어나고 흑인과 아시아계 배우들의 지분이 높아지는 이유도 미국 사회의 문화적 지형이 그만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변화한 관객의 입맛에 맞출 줄 아는 유연함은 할리우드가 여전히 문화 산업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 한국 영화는 가족과 여성, 아이를 묘사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여전히 부족합니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나기가 너무 힘들고, 지난해 말 개봉한 <침묵>이나 올 초 개봉한 <염력>에서처럼 가족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뻔한 가부장 캐릭터는 너무 많습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나 <변산>처럼 가부장제 위계질서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는 경우가 그나마 신선해 보일 정도입니다.

물론 이렇게 한국 영화보다 오히려 할리우드 영화가 진보적인 가치를 잘 대변하는 현상을 두고 한국 영화 만드는 사람들의 게으름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의 취향과 기호가 여전히 보수적인 시장에서 앞서 나가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우리나라 사회는 가부장제 질서가 여전히 확고합니다. 결혼한 여성은 맞벌이는 물론, 가사와 육아를 거의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요구받는 경우가 아직도 많습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또한 수십 년 전보다야 당연히 높지만, 여전히 낮습니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은 물론 갖가지 여성 혐오를 당하기 일쑤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지금 변화의 요구가 들끓고 있습니다. 낡은 가부장제와 결별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죠. 이 에너지는 현재도 만만치 않지만, 만족할 만한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는 계속 커질 것입니다. 출판계에서 페미니즘 도서의 판매가 급증하는 현상이나 여성들의 힘이 조직적으로 드러나는 집회가 많아진 것도 이런 에너지를 반영합니다. 한국의 영화 제작자들도 이제는 이런 흐름에 발맞출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난 여성의 자아실현과 연대를 다룬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유독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한국과 일본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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