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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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2018. 7. 4. 개봉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청춘은 그 자체로 드라마를 품고 있는 시기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고, 새로운 깨달음을 받아들이기도 쉽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확신을 혼자서만 품고 지내도, 세상의 기대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도 그만이고요. 물론, 성인답게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는 갖고 있어야겠죠.

<변산>의 주인공 학수는 홍대 클럽에서 이름이 조금 알려진 래퍼입니다. 매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전하긴 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못 내는 형편입니다. 그래도 학수는 계속 노력합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좁은 고시원에서 지내야 하지만 꿈을 잃지 않습니다. 덕분에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도전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비교적 순조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향’의 부름을 받습니다. 10년 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고향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까지 받지요. 평소 서울 출신에 고아라고 얘기해온 학수는 모든 걸 싹 무시해 버리고 오디션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오디션 다음 단계에서 탈락의 쓴잔을 맛보게 되고, 이제 학수에게 남은 선택지는 병이 났다는 아버지에게 가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상투적인 설정을 뛰어넘는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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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사실 <변산>의 설정은 그다지 새롭지 않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젊은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한국 영화’라고 했을 때 곧바로 떠오르는 몇몇 설정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병에 걸린 부모에 대한 애증, 풋사랑의 사연, 친구들과 얽힌 흑역사 등 뻔한 설정들이 곳곳에 눈에 띕니다. 어떤 관객들은 ‘또 이런 식이야?’라며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고 지켜보면 상투적인 설정을 뛰어넘으려고 애쓴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개별 에피소드를 개성 있게 풀어냈고, 다양한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를 통해 어떻게든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볼만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이 솔직한 자기 인식과 반성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결말 역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최근의 한국 영화들이 장르적 매끈함이나 예술적 포장에 더 신경을 쓰느라 정작 메시지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변산>의 이야기는 탄탄한 플롯과 매끈한 전개를 갖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름의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인용되는 랩 가사, 시구, 산문 등이 영화라는 매체와 아주 잘 어우러진다는 것도 이 영화에 매력을 더합니다. 우리말로 된 문학과 음악, 영화가 한 작품 안에서 이만큼 행복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기도 해서, 한국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 관객에게 적지 않은 만족감을 선사할 것입니다.

삽입된 랩을 모두 직접 소화한 박정민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연기의 범위를 또다시 확장했습니다. 래핑이 아주 맛깔스럽지는 않았지만, 자기만의 느낌이 있어서 듣기에는 좋았습니다. 연기에 있어서는 몇 가지 감정들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면서도, 한 번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한 감정의 결을 잘 살린 것이 돋보입니다.

학수의 초등 동창 선미를 연기한 김고은의 연기도 좋습니다. 팔색조 같은 박정민과는 대조적으로, 캐릭터에 알맞은 톤을 차분하게 유지합니다. 그러면서도 맛깔스러운 대사 처리와 강단 있는 모습으로 변화를 준 것이 인상적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잘 끌어내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조연급 연기자들의 연기가 좋습니다. 특히 김준한, 신현빈, 고준 등은 캐릭터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극복하고 연대하려는 노력, 마음을 움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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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영화에서 주의 깊게 본 것은 ‘젊은 세대가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부모 세대와 선배 세대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학수도 선미도 아픈 부모를 모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학수와 그의 동창들에게 있어서 뺀질대는 선배 원준은 어떻게든 넘어서야 할 상대죠.

<변산>은 일반적인 드라마 장르의 다른 한국 영화들처럼 사회적 통념에 따라 연장자를 인정해 주거나 어설픈 화해로 무마하려 들지 않습니다. 부모가 아프다고 무조건 용서해 주거나 선배랍시고 그대로 우위를 인정해 주는 모습 같은 것은 없지요.

그 대신, 시간을 들이고 모양새를 갖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윗세대를 극복합니다. 그런 후에 동년배들과 함께 뭉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이 ‘극복과 연대’의 과정에서 ‘혐오의 대상과 자신이 닮았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점을 잘 짚어낸 것입니다. 학수에겐 아버지 같은 면도, 선배 같은 면도 분명히 있었지만, 스스로 깨닫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만, 폭력이 너무 쉽게 개입된다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신라의 달밤>(2001), <비열한 거리>(2006), <영화는 영화다>(2008) 같은 십여 년도 더 된 몇몇 한국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이런 설정의 문제는 조폭 캐릭터가 등장하는 한국 영화가 늘 그랬듯 폭력을 미화하고 낭만화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의 갈등 극복과 성장을 위한 과정은 왜 언제나 꼭 이런 식인 걸까요? 이제는 좀 다른 종류의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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