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공감대 획득한 5.18 영화 – 택시운전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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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하나는 사건 당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입니다. 관객은 주인공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실화 속 상황을 직접 체험하듯 영화를 보게 됩니다. 역사적 인물의 개인적 고뇌를 재조명하거나, 누명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한 개인의 비극을 다룰 때 효과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재가 되는 실화에서 한 발 물러선 관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입니다. 대개 아무 것도 몰랐던 주인공이 충격적인 진실을 깨닫게 된다는 식의 전개가 많습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사건 당사자에게 감정 이입하지는 않지만, 각성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깊이 공감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택시운전사>는 후자의 방식을 취합니다. 5.18을 다루지만 주인공은 광주 사람이 아닙니다. 5.18을 취재하러 광주로 향하는 독일 기자 토머스 힌츠페터를 도운, 택시기사 김사복의 이야기니까요. 사회 문제에 전혀 관심없던 소시민인 김사복은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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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주인공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면서 관찰자 주인공을 내세우는 작품 중에는 그런 영화들이 꽤 많거든요. 주인공이 개인 문제로 고민하거나 스스로의 처지를 과도하게 비관하기 시작하면서, 소재가 된 중심 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작가의 페르소나인 주인공의 내적 고민이 주제가 돼 버리곤 하죠

5.18을 다룬 영화들 중에 <부활의 노래>(1993), <꽃잎>(1996), <박하사탕>(1999) 같은 영화가 아쉬웠던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지금 눈으로 보면 이 영화들은 지식인 남성의 좌절이나 죄의식, 혹은 시대 흐름에 잘못 휘말린 것을 애달프게 여기는 중산층 남성의 자기 위안에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김사복이 부닥치는 딜레마는 그런 개인의 심리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는 돈벌이를 위해 광주로 왔다가 엄청난 사회적 비극을 목격합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그는 계속 고민합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그냥 두고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도와야 한다는 걸 아는데, 서울로 가야 하니까요. 그에겐 사랑하는 딸을 키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삶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은 김사복만의 것이 아닙니다.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런 것은 있었습니다. 이웃을 초대해 저녁을 같이 먹고, 강변가요제를 꿈꾸며 대학에 다니는 삶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하나같이 소중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광주 사람들은 개인의 안위를 잠시 접어두고 폭압적인 공권력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낸 경험은 끝내 김사복을 변화로 이끕니다.

김사복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섬세한 감정선을 지닌 좋은 각본을 잘 살려냅니다. 너스레를 떨며 한국 소시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초반부는 물론이고, 끔찍한 비극을 목도하는 순간의 감정 표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했을 때의 미안함과 씁쓸함 등을 빼어나게 연기합니다.

특히 김사복이 가까스로 광주를 벗어난 날, 식당에서 국수를 먹다가 발걸음을 되돌리는 장면은 몇 번을 다시 봐도 표현력이 대단합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국수를 욱여넣습니다. 이제까지의 고민을 잊고 딸에게 돌아가겠다는 듯이요.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두고 온 광주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을 도저히 떨칠 수가 없습니다. 국수를 먹으면 먹을수록 고민은 더합니다. 말 한 마디 안 하고 국수를 먹을 뿐인데, 인물의 심정은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보편적 공감대 획득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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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습니다. 우선 황태술(유해진)의 처가 저녁 차리는 정도의 기능적인 역할만 하고 빠지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설정상 여성 인물의 비중이 매우 낮은 영화이긴 하지만, 다른 여성 인물들은 이처럼 기능적으로 소비되지는 않았습니다. 김사복의 딸과 집주인 여자, 김사복에게 김밥 건네준 대학생 등은 짧은 분량에도 깊은 인상을 남기죠. 황태술의 처에 관해서는 뭔가 편집 상 빠진 부분이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라이맥스 지점에 배치된 자동차 추격 장면의 톤도 문제입니다. 광주의 택시 기사들이 김사복을 돕는다는 설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앞에서 소개된 인물들이고, 연대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니까요. 문제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게, 할리우드 액션물처럼 구현됐다는 겁니다. 감독이나 촬영감독이 여기서 기술적 역량을 보여 주고 싶어 무리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간 5.18을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당사자들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이거나 극영화라 하더라도 <화려한 휴가>처럼 당시의 광주 시민들을 주요 인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작업들은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기록해야 할 중요한 역사 자료입니다. 당시 벌어졌던 실제 사건들을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일 역시 필요합니다.

<택시운전사>는 기록과 재현이란 측면보다는, 5.18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국민 모두의 역사적 기억으로 확실히 자리잡게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평범한 소시민 김사복이 겪은 단 며칠 간의 이야기는 이념과 출신 지역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1천 2백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의 흥행 기록은, 5.18의 의미와 가치는 이제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것이 됐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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