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Columbus (2017)

CLB_P
ⓒ(주)영화사 오원

2018. 4. 19. 개봉

미국 영화는 LA를 비롯한 서부 해안 지역, 동부의 뉴욕이나 뉴잉글랜드 지방을 배경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돈과 사람이 모여드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보니 영화 제작도 활발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규모 독립 영화 중에는 미국 내의 다른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보통 그 지역만의 특징이나 사회 문제를 이야기에 반영하여 자기만의 색깔을 냅니다.

<콜럼버스> 역시 그런 작품입니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도시 콜럼버스는 바로 이웃한 오하이오주의 주도 콜럼버스와는 달리 인구가 5만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유명 현대 건축가들의 작품이 곳곳에 가득한, 미국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현대 건축의 명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인 남성 진(존 조)은 유명 건축과 교수인 아버지가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콜럼버스로 옵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이민 와서 자랐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번역 일을 합니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연을 끊고 지냈던 터라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아버지 옆에 있는 일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조용한 소도시인 이곳에는 딱히 할 일도 없습니다.

한편, 콜럼버스의 도서관에서 일하는 백인 여성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는 이 도시에서 자란 토박이로서, 도시에 산재한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며 건축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진의 아버지가 하는 강연을 들을 예정이었던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진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건축물이 매개가 된 독특한 우정

CLB_#1
ⓒ(주)영화사 오원

이 영화의 이야기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고립된 두 남녀가 콜럼버스의 건축물을 매개로 다양한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가까워지고,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잡게 되는 과정을 담담히 풀어낼 뿐입니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이뤄지지요.

그렇지만,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힘이 있습니다. 미장센을 통해 인물이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감정 상태에 대한 설명을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올리기 때문이죠. 진과 케이시는 화면 안에서 공간에 짓눌려 있거나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기도 하지만, 건축물이나 자연물을 통해 해방감을 맛보거나 다른 이와 연결돼 있음을 느끼기도 합니다.

특히 콜럼버스의 명소라고 할 수 있는 건축물들은 이들의 감정과 생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됩니다. 두 사람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는데, 이 과정은 화면구성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되면서 더 절실하고 애틋한 것이 됩니다.

흔히 유명한 건축물을 보러 가면 대개 그것의 디자인적 가치나 역사적 의미에 집중하게 됩니다만, 사실 모든 건축물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과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이 영화가 콜럼버스의 건축물들을 인간 관계 맥락 안에서 파악하고,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감독 코고나다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 감독입니다.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다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예명 역시 오즈 야스지로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각본가 노다 코고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읽은 데서 따온 것이죠. 이 영화에 나온 대부분의 숏은 공간과 인물의 관계를 빼어나게 포착했던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존 조는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온 한국계 배우답게 안정적인 연기로 극 전체를 이끕니다. 3편까지 나온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로 ‘한국계 배우가 주연인 영화도 미국 영화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듯이, 이 영화에서도 관록 있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특히 별일 없어 보이는 외양 뒤에 숨겨진 불안과 허무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장면들이 좋습니다.

케이시 역을 맡은 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연기 또한 안정적입니다. <지랄발광 17세>에서 주인공의 절친 역할로 나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진짜 감정을 감추고 살 때가 많은 케이시의 일상을 제법 잘 표현한 편입니다.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장면들이지만, 관객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전혀 다르지만, 같은 문제를 지닌 두 사람

CLB#2
ⓒ(주)영화사 오원

진과 케이시는 여러모로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쪽은 교육 수준이 높고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미국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한국 남성입니다. 다른 한쪽은 아직 배우고 싶은 것은 많지만, 집안 사정이 허락치 않는 백인 여성이죠. 또한, 진은 건축 자체에 관심이 없는 반면, 케이시는 건축에 대한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들이 각자 부모와 맺고 있는 관계도 언뜻 보기에는 이처럼 정반대 맥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진작부터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임을 드러내는 진과 달리 케이시는 어머니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케이시의 일상에 드리운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 정체를 드러내면, 두 사람 모두 부모 때문에 어딘가에 붙잡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영화 내내 진이 진절머리를 치듯 한국은 유난히 형식을 중요시하는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입니다. 서구의 나라들은 물론이고, 이웃한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했을 때도 그런 편입니다. 하지만, 세계 어느 문화권에나 진과 케이시처럼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과의 관계가 인생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가족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화 단위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면서, 다른 인간과 함께 살아갈 때 갖춰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배우게 되지요. 그러나 이런 배움의 과정이 끝난 후에도 가족은 여전히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가족과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얽혀 있거나, 관계 설정을 정확히 해두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진과 케이시는 자기들의 과거, 즉 부모와 쉽게 화해하는 길을 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현재의 인연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와 씨름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적절히 선을 긋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차분히 준비해 나가는 거죠. 일견 야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관계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요.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