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 A Quiet Plac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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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호러 영화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주된 갈등 요소로 삼습니다. 귀신, 악령, 정체불명의 살인마 등 불가해한 존재가 가하는 죽음의 위협은 영화 속 인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지요. 주인공은 이런 감정적 충격을 극복하고 위협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데, 바로 이 과정이 호러 영화 서사의 바탕이 됩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소리를 듣고 습격하는 괴생명체입니다. 그들이 등장한 지 89일째, 버려진 마을의 드럭 스토어에서 물건을 챙기는 5명의 가족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직 수화로만 이야기하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합니다. 막내아들이 갖고 싶어 하는, 소리 나는 우주 로켓 장난감도 금물입니다.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평범하게 시작하지만,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영화의 초반부는 일반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물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텅 빈 세계,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들, 은신처의 환경 등을 소개하는 과정은 평범한 편입니다. 물론,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가 약간의 개성을 더해 주긴 하지만요. 손짓으로 하는 대화에는 자막이 따라붙는데, 어차피 외화는 자막으로 소화하는 우리 관객들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양상은 달라집니다. 특히 에밀리 블런트가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 목욕탕 장면 전후로 몰입감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이때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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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미국 드라마 <오피스>의 짐 역할로 잘 알려진 배우 존 크래신스키는 이 영화에서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입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을 이어가면서도, 간간이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들을 섞어 리듬감을 준 것이 주효했습니다. 평범해 보였던 초반 설정들 역시 영화 속에서 모두 깨알같이 활용되면서 영화 보는 재미를 한층 높입니다.

사실 이 영화에 사용된 기법이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기존의 호러나 스릴러에서 많이 사용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만큼은 최고 수준입니다. 다양한 기법을 어느 시점에 어떤 순서로 제시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많이 연구하고 노력한 점이 성공적인 결과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할리우드 호러 영화는 점점 서스펜스 스릴러에 가깝게 연출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초반에 으스스한 분위기를 깔아 놓고, 중반 이후에 극도로 긴장되는 순간과 스릴 넘치는 추격전을 번갈아 배치하여 롤러코스터 타듯 정신없이 몰아치는 것이 특징이지요. 이 영화도 그런 경향을 그대로 따라간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과 믿음, 오해에서 비롯된 원망의 감정 같은 것들을 중심 플롯에 잘 엮은 각본이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족을 지키는 가부장’ 같은 상투적인 설정에 기대지 않고, 가족 전체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게 한 것이 돋보입니다.

가부장만이 아닌, 가족 구성원 모두가 중요하다

언뜻 보기에 현대의 가족은 이전보다 연대 의식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취향과 관심사가 다르고, 각자의 생활이 바쁘기 때문에 공통점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또한, 언론에 소개되는 끔찍한 사건 사고 중에는 가족 관계 내에서 벌어진 일들이 태반입니다.

가족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과 연대를 경험하는 공동체’라는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닐 겁니다. 출산과 양육 과정을 거치면서 쌓이는 가족 간의 정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인간 아기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시대가 오지 않는 이상, 가족의 역할과 위상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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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엔터테인먼트

오늘날의 가족이 일그러진 초상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의 횡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간에 벌어지는 삭막한 감정싸움이나 끔찍한 범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권위적인 가부장, 혹은 가장 역할을 대신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어머니나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자기 권위만 내세우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다른 이에게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할 때, 자기 역할만 과대평가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지 않을 때 미움과 갈등은 자라납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여전히 가부장의 권위를 놓지 않으려 합니다. 은신처를 통제하는 것도, 누가 언제 뭘 할지 결정하는 것도 모두 그의 몫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가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반면, 가족의 장녀이자 청각장애인인 리건(밀리센트 시먼즈)의 비중은 뒤로 갈수록 높아집니다. 그녀는 원래 도입부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또한, 여자이고 장애인이라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더 큰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위기가 닥치자 그녀 역시 가족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게다가 그녀의 장애는 결국 세계를 구하는 출발점이 되기까지 합니다.

이런 역할 바꾸기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합니다. 가족은 누구나 소중합니다. 현실 세계에서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몸이 건강하든 허약하든, 연장자든 연소자든 누구나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에 따라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존경을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은 그냥 각자의 역할과 위치일 뿐 가족 관계 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잣대가 결코 아닙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줄 때, 가족은 공동체로서 온전히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가족이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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