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사건 영화 ‘레드 헌트'(1997)가 남긴 것

일본의 패망 이후 해방을 맞이한 한반도는 좌우의 극심한 이념 대립과 정치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평범한 국민들이었죠.

그중에서도 ‘제주 4.3사건’은 수년에 걸쳐 수만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장 참혹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육지와 단절된 제주도에서 벌어졌고, 이념 문제까지 얽혀 있었기 때문에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진실을 밝히려는 뜻있는 사람들의 줄기찬 노력은 계속되었고,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 작업 및 특별법 제정이라는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4.3사건 다룬 첫 번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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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다큐멘터리 <레드 헌트>(1997)는 4.3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입니다.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웠던 소재를 다뤘기 때문에 제작 및 상영 과정에서 공권력의 탄압을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1992년 제주도의 ‘다랑쉬굴’에서 백골 시신 여럿과 그들이 은신했던 생활 흔적이 함께 발견됩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들의 유해를 신속히 화장해 버리는 등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왜 이들은 동굴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왜 발견되고 나서 급히 화장되는 신세가 돼야 했을까요? 이런 의문은 4.3 사건의 전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전반부에서는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4.3사건의 정치 사회적 맥락을 짚어 나갑니다.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무장봉기만이 아니라, 그 전해인 1947년 3.1절 기념식에서 있었던 무장 경관의 발포 사건이 4.3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적시합니다. 6명의 사망자를 낸 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서 제주도의 민심은 악화됩니다. 일반인들과 공무원들까지 똘똘 뭉쳐 총파업을 벌일 정도였죠. 미 군정 당국은 극우 인사를 도지사로 임명하는 등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고, 이는 4.3사건 내내 악명을 떨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 들어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듬해 4월 3일에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월 10일 선거를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납니다. 이 봉기를 주도한 남로당 인사들은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진압군과 협상을 벌이며 평화롭게 해결할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진압군의 토벌 작전이 시작됩니다. 이후 군경과 서북 청년단이 제주도 전역에서 벌인 ‘빨갱이 사냥’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내면서 수년 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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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립기록문서관리청

후반부에 접어들면, 생존자들의 증언이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지옥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입산한 반군이나 혹은 동조자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수많은 마을을 초토화한 만행부터, 해안가 동네에서 공개적으로 자행된 집단 학살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증언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4.3 사건의 배경과 경과는 물론, 이후 벌어진 악몽 같은 토벌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제주도민이 아니더라도, 4.3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89년 설립되어 증언을 채록하고 자료를 수집해온 ‘제주4.3연구소’와 지속적인 취재를 통해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물론 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긴 하지만, 그때 기준으로 봐도 투박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문어체로 일관하는 해설이나, 짜임새가 부족한 구성 등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관련 연구자 및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충실하게 담아낸 사료적 가치, 그리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를 최초로 다뤘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권력이 국민을 저버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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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4.3사건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의무를 다하지 않는 모습’이 전형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국가 혹은 공권력이 일반 민중의 기대를 수없이 배반한 사건들로 얼룩져 있습니다. 동학 혁명 진압 과정에서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이 ‘배신의 역사’는, 부패한 왕정과 일본의 식민 지배, 해방 이후의 권위주의 정부 등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이어졌지요.

20세기 내내 우리나라 지배층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데 공권력을 남용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5.18은 4.3과 매우 흡사한 비극으로서, 무고한 국민을 거리낌 없이 학살한 것부터 ‘빨갱이’ 탓을 하며 사후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까지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민주 정부 10년을 겪고 난 21세기에도 이런 일은 계속됐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공권력이 시민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권리를 빼앗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역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배신의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합니다. 이 사건이 일으킨 사회적 공분은 결국은 탄핵 심판까지 이어져 정권을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4.3사건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활동이 시작됐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사과한 적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4.3사건 추념식에 직접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역대 민주 정부가 4.3사건의 진상 조사와 해결에 힘쓴 이유는, 과거의 잘못된 역사와 결별하고 진짜 국민을 위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3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또한 평화를 염원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평화밖에 없습니다. 마침 우리나라는 곧 있을 남북 및 북미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 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긴 여정을 다시 한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레드 헌트>는 이런 시점에 보기 딱 알맞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담아낸 비극적인 역사는 평화 정착을 위한 중단없는 노력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웅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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