툼레이더 Tomb Raid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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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내러티브가 있는 게임의 시나리오는 종종 영화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어드벤처 장르는 더 그렇습니다.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상황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형식이라,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영화 주인공의 처지에 몰입하는 극영화의 방식과 그대로 겹치지요.

영화 <툼레이더>는 동명의 유명 게임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이 게임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는 독보적인 인기와 지명도를 지닌 캐릭터죠. 이미 지난 2001년과 2003년 두 차례에 걸쳐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2013년에 새롭게 리부트된 게임의 캐릭터와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완전히 새로 만든 것입니다.

라라(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자전거 배달 일을 하고 취미로 격투기를 하는 20대 여성입니다.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 기회를 놓치거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대부호인 크로프트 가문의 후계자이지만, 7년 전 고고학자 아버지가 실종된 이후 집을 나와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는 서류에 사인하고 상속인이 되는 걸 거부했기 때문이죠.

뜻하지 않은 기회에 아버지의 비밀 메시지를 접하게 된 라라는 아버지가 실종된 곳이 일본의 전설 속 여왕 히미코의 무덤 발굴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모두 검토한 라라는 무작정 아버지의 행적을 뒤쫓기로 마음먹습니다.

진짜 인간에 가까운, 새로운 라라 크로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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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실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과연 괜찮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뻔한 어드벤처 영화의 공식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결과물은 생각 이상으로 좋은 편입니다. 우선 다채로운 액션 장면들이 눈에 띕니다. 도심 자전거 레이싱이나 부둣가 추격전 등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액션 장면을 뻔하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한 부분이 돋보입니다. 고대 여왕 히미코의 무덤에 얽힌 비밀과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빛나게 만든 것은 한층 현실감 있는 존재로 거듭난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입니다. 과거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캐릭터는 현실감 있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게임 속 등장인물 같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가슴 큰 액션 여전사’라는 식의, 성적으로 대상화된 원작 게임의 인물 콘셉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8년의 라라 크로프트는 다릅니다. 원작으로 삼은 2013년작 게임이 그랬듯, 그녀는 처음부터 완성된 액션 영웅이 아닙니다.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과제에 직면하여 목숨을 걸고 처절하게 분투한 끝에 차츰 성장하는 인물입니다. 또한 실수도 하고 부질없는 고집을 부리기도 하며, 사랑하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가집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다양한 액션 장면을 무난히 소화하는 것은 물론, 감정적 호소력이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합니다. 간단한 동작이나 지그시 바라보는 짦은 순간만으로도 극 중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하지요.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메인 사건인 히미코의 무덤 발굴보다는 그녀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제대로 성장하게 되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캐릭터의 존재감만 보면 80년대 모험물의 대명사 인디아나 존스에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다만, 악역 마티아스 보겔이란 인물의 카리스마가 다소 떨어지고, 액션 영화답게 ’그렇다 치고’ 넘어가는 장면들이 눈에 띄는 것은 문제입니다. 중반부 전개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영화가 됐을 것입니다.

할리우드의 변화, 한국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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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최근 몇 년 사이에 할리우드에서는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 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물 설정도 과거처럼 단순히 ‘액션도 하는 예쁜 여자’로 대상화된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그들의 내면과 목표 의식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입체적입니다.

<헝거 게임> 시리즈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원더우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새롭게 선보인 <툼레이더> 역시 그런 경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미숙한 20대 후계자가 결국 스스로 영웅의 길을 걷는 과정은 외적인 목표 달성 여부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할리우드 영화의 변화를 업계의 분위기가 진보적이거나 의식이 깨어 있어서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었지만, 주류 할리우드 영화는 언제나 거의 백인 남성의 시선으로 만들어져 왔으니까요. 오히려 그보다는 점점 위력을 더해가고 있는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관객들의 달라진 취향을 선제적으로 반영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할리우드의 기민한 대응은 위기에 처한 한국 영화계가 적극적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명절 대목에 개봉하는 영화도 흥행에 실패할 정도로 관객의 변화하는 취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유명 영화인들의 성폭력 사례들이 연달아 폭로되면서 업계 전체가 더 코너에 몰리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위기를 헤쳐가는 방법은 그간 소홀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그것을 채워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갔던 업계 내부의 분위기는 그간 소외됐던 여성 영화인들에게 폭넓은 기회를 주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소재 면에서도 천편일률적인 남성 중심의 서사 대신 세상의 다양한 시각과 관심을 반영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개발해야 합니다. 바꿀 수 있을 때 바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영화는 앞으로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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