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슬럼버(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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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14일 개봉

이웃 나라 일본의 만화나 장르 소설은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작품보다 완성도가 높고 소재도 훨씬 다양한 편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작품의 영화화 판권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할리우드가 선점하기 일쑤인 영미권 원작보다 접근이 쉽고 비용이 저렴한 것도 이유가 됩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된 <골든슬럼버>도 지난 2008년에 출간된 동명의 일본 소설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일본에서도 이미 2010년에 영화로 만들어졌고, 같은 해 국내에도 소개되었습니다.

택배기사 건우(강동원)는 유명 아이돌 가수를 치한으로부터 구하면서 모범시민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입니다. 어느 날, 고교 시절 친구 무열(윤계상)의 연락을 받고 세종로 근처에서 그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유력 대선 후보가 탄 차량이 폭발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건우에게 무열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선행의 표상이 된 건우를 암살범으로 만든 후 자폭하게 만드는 것이 자기네  ‘조직’의 계획이었다는 거죠. 무열은 이 말을 남긴 채 건우에게 마지막으로 도망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효과적이지 못한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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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원작 소설의 배경과 정서를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게 효과적으로 바꾸었느냐였습니다. 원작은 한순간에 도망자가 된 주인공의 이야기 외에 그를 돕는 여러 사람들, 한때 친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친구들과의 관계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일반 정서와는 다른 부분이 드러납니다. 결말 역시 상대의 음모를 밝혀내고 완전히 누명을 벗는 식으로 깔끔하게 떨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대중적인 취향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원작 소설과 영화를 바탕 삼아 한국 배경에 맞게 몇 가지만 바꾸었을 뿐, 적극적인 각색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원작의 일본 총리 암살 사건을 한국의 대선 후보 암살 사건으로 바꾼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나름 국내 상황을 고려하긴 했지만, 일반 국민의 여론이 제도 정치에 좀 더 잘 반영되며 국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한국 사회 특유의 분위기는 없습니다. 이런 특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이야기 전개의 변수로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질 않았습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의 고교 시절 동아리 활동 역시 원작과는 달리 밴드로 바뀌었지만, 그에 따라 변화해야 할 인물의 성격이나 서로 간의 역학 관계는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향수 가득한 분위기도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과거의 동아리 활동에서 낭만을 찾는 것은 일본 대중문화 매체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대중의 감성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습니다.

또한, 원작 소설이 출간된 지 햇수로 10년 정도 됐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10년간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가장 극적으로 변한 시기였습니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에 좀 더 깊숙이 자리 잡았고, 방대한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골든슬럼버>는 그런 측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동시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맥락 없고 감정 이입이 힘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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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시종일관 관객을 구경꾼으로 만들어버린 각본과 연출입니다. 먼저, 관객이 영화 속 주인공의 상황에 공감하게 만드는 장치가 없습니다. 영화 시작부터 건우는 뉴스 영상으로 소개될 뿐이어서, 대선 후보 암살 사건 같은 큰일이 일어나도 딱히 그의 처지에 감정 이입이 안 됩니다. 누명을 쓰게 됐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너무 마음이 안됐다든지 절대 안 잡혔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식의 감정이 안 생기는 거죠.

더 심각한 것은 영화를 끝까지 봐도 건우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 밴드를 했던 누명 쓴 보통 사람’이라는 한 줄짜리 인물 소개 외에, 관객은 그를 도무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원래 꿈과 욕망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그를 힘들게 했는지, 그가 대책 없이 무한 긍정으로 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관객은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이 아무리 답답한 상황에 부닥쳐도 별 느낌 없이 심드렁하게 구경만 하게 됩니다.

2주 앞서 개봉했으나 흥행에 실패한 <염력> 같은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투박하고 재미가 덜한 것이 문제였지,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골든슬럼버>는 특이한 상황에 놓인 인물의 겉모습만 보여줄 뿐, 창작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전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결과적으로 관객이 배우들의 연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이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가 감정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배우들은 분명히 제작 과정에서 씬별 상황에 한껏 몰입해서 연기했을 텐데, 그것을 모아서 완성된 영화는 그런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스타성과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는 평균 이상의 관객 동원을 가능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관객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번 설 연휴 대목에 많은 제작비를 쓴 두 편의 한국 영화 <염력>과 <골든슬럼버>가 부진한 흥행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한국 영화 산업이 반드시 곱씹어 봐야 할 부분입니다. 통상 명절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비수기 개봉작보다 관객 동원력이 괜찮다고 평가받는 대표 선수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마불사’라는 생각으로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기획-각본-연출이 조화를 이룬, 평균 수준의 영화를 안정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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