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팬서 Black Panth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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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18. 2. 14. 개봉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를 실사 영화의 무대로 옮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새 장을 열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마블이 창조한 다양한 슈퍼 히어로를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서로 교류하도록 만들면서 새로운 볼거리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초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개별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난 편입니다. 세계관 내의 다른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도 즐기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죠.

<블랙팬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18번째 작품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아버지를 잃은 와칸다의 왕자 티찰라(채드윅 보스먼)는 왕위를 계승하고, 전설의 ‘블랙팬서’ 자리도 물려받게 됩니다. 대외적으로 와칸다는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곳은 막강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 나라입니다. 최강의 금속 ‘비브라늄’이 존재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죠.

한편, 티찰라는 비브라늄을 훔쳐간 악당 클로(앤디 서키스)가 새로운 거래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부산으로 잠입합니다. 여기서 티찰라는 클로의 일당으로 등장한 킬몽거(마이클 B. 조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껄끄러운 악연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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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이유로는 특유의 시각적 볼거리와 유머 외에, 영웅 신화의 플롯을 그대로 차용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 플롯은 보통 이렇게 전개됩니다. 문제 상황에 맞닥뜨린 주인공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죽음이나 그와 비슷한 실존적 위기 상황을 겪게 됩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고치는데 성공하거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이것을 극복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게 되지요.

<블랙팬서>에서도 이 공식은 유효합니다. 다만 ‘죽음’과 ‘부활’ 과정에 우연적인 요소가 가미되며 매끄럽게 전개되지 않는 것이 흠일 뿐입니다. 나중에 나올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등장하기로 돼 있는 주인공의 생사 여부가 딱히 긴장감이나 스릴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걸 감안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점도 많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제작진들은 영화 전반에 아프리카의 자연 환경과 역사, 문화를 녹여 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초반부를 장식하는 티찰라의 왕위 계승 시퀀스는 그런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아프리카의 실제 부족을 참조해서 만든 영화 속 여러 부족의 설정, 풍부한 색감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옷과 자연 환경, 아프리카 전통 무예를 활용한 액션 장면 등이 잘 어우러진 명장면이었으니까요.

또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흑인들이 갖게 되는 딜레마를 영화의 중심 메시지로 삼았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사실 미국 흑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수자들은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관을 헤치고 성공했으나 견고한 사회 질서의 힘을 두려워하여, 기존 질서에 더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힘들게 얻은 성공을 차 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블랙팬서>에서 와칸다가 처한 상황 역시 그렇습니다. 와칸다는 지구의 어떤 나라도 두렵지 않은 강국이지만, 일부러 시끄러운 일을 피하려고 최빈국의 가면을 쓰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들의 성공에 안주하기보다는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나아가 인류를 위해 나서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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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주도적인 여성 인물들의 활약 역시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티찰라의 옛 연인으로서 관계를 리드하는 나키아(루피타 뇽오), 사람이 아닌 나라와 민족에 충성하는 오코예 장군(다나이 구리라), 와칸다 과학 기술의 핵심인 티찰라의 동생 슈리(레티나 라이트) 등이 그들입니다. 모두 그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나왔던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도 독립적이고 현실감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감독 라이언 쿠글러는 독립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2013)로 주목 받은 이후 <록키> 시리즈의 스핀오프 격인 <크리드>를 감독했습니다. 그는 <블랙팬서>의 연출 제의를 받자, 데뷔작에서 함께 했던 배우 마이클 B. 조던과 촬영감독, 미술감독, 음악감독을 프로젝트에 합류시켰습니다. 촬영감독 레이철 모리슨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여성 촬영감독으로는 최초로 촬영상 후보에 오른 인물이기도 합니다.

재조명된 아프리카, 그 의미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고 가까워졌다지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알기란 어렵습니다. 그저 매스컴을 통해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부만 경험할 수 있을 뿐이지요.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찾아보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제3세계’로 알려진 지역은 물론이요 유명 강대국의 실제 삶과 문화조차도 제대로 알 길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랙팬서>가 아프리카 대륙과 민족을 재조명한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아프리카를 ‘기아에 허덕여 원조가 필요한 나라’라고만 알고 있을 많은 사람의 편견을 교정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테니까요. 확실히 이 영화는 제국주의의 침략 이전에도 아프리카만의 역사와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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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런 시도를 두고 ‘흥행을 노린 초국적 거대 자본이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인구 중에서 흑인의 비율은 15%가 채 안 되는 수준입니다. 북미 시장 및 전 세계 시장을 노리고 만든 영화에서 흑인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켜 그들의 역사와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모험적인 기획에 가깝습니다. 사업적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계산이 안 나오는 일이죠.

이 영화가 지나치게 ‘PC(politically correct)한 것에 신경 쓰기 때문에 유치하다’는 비판 역시 딱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가 맘에 안 든다는 불평을 돌려서 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이 영화는 PC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변화한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한 거라고 보는 게 더 맞습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소수자에 대한 생각이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동성 결혼이 합법화될 정도로요. 트럼프의 당선은 오히려 이런 변화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이 만든, 그들의 지나온 역사와 앞으로의 과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주제 의식만큼은 일말의 보편성을 지닙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최상류층이 결탁하여 ‘끼리끼리 해 먹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힘과 재력을 다른 시민과 함께 나눌 줄 아는 공동체 의식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변화를 거부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큰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영화의 티찰라가 자신의 편견을 과감히 버린 다음에야 반전의 계기를 맞을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었지만 대기업과 결탁하여 사익을 추구한 끝에 사법 처리를 앞둔 이명박과 박근혜의 말로가 그들의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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