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히어로 The Her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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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테이션

2017. 2. 1. 개봉

영화는 인생의 여러 국면을 소재로 삼습니다. 성장기의 어린이나 청소년의 삶을 조명하기도 하고, 청년기의 꿈과 사랑이나 중년의 위기에 대해 다루기도 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른 노년의 삶 역시 종종 좋은 소재가 되지요.

<더 히어로>의 주인공은 70살이 넘은 배우 리 헤이든(샘 엘리어트)입니다. 그는 한때 다양한 서부극에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리긴 했지만, 성공한 배우는 아닙니다.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가 딱 1편밖에 없을 정도죠. 그래도 ‘서부극보존협회’라는 서부극 열성 팬들 모임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여하겠다는 연락을 받을 정도는 됩니다. 지금은 닭고기 소스 광고 같은 데 목소리를 빌려주는 정도의 일만 하고 있지만, 리는 여전히 배우로서 자기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갈구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췌장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췌장암 5년 생존율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가 않습니다. 가끔 대마초를 같이 피우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 옛 동료 제러미(닉 오퍼맨)나, 평소 소원하게 지냈던 딸 루시(크리스틴 리터)는 물론, 제러미의 집에서 우연히 만나 호감을 느끼게 된 여성 샬럿(로라 프레폰)에게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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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다소 진부하기 때문에 이후 전개도 그럴 것 같지만, 의외로 다른 길을 갑니다. 적어도 주인공이 과거와 화해하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희망차게 보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은 아니지요. 이 영화의 리는 이미 살아온 날이 많고 무엇을 바꿔보기에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샘 엘리어트는 실제로 <내일을 향해 쏴라>(1969)의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다양한 서부극과 액션물에 출연했었습니다.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해왔지만, 경력에 비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배우는 아닙니다. 그의 실제 삶과 영화 속 배역이 비슷하다는 걸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 되짚어 봤더니 영화 속 리의 감정이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을 맡은 감독 브렛 헤일리는 다른 작품을 찍으면서 샘 엘리어트와 친분을 쌓았습니다. 평소 샘이 들려줬던 인생 이야기가 재미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그에게 출연을 부탁한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와 인연이 있는 것은 감독만이 아닙니다. 제러미 역의 닉 오퍼맨 역시 인기 코미디 시리즈 <Parks and Recreation>에서 그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습니다. 샘 엘리어트의 실제 배우자이자 <졸업>(1967)이나 <내일을 향해 쏴라> 같은 영화의 여주인공 역할로 대중에게 각인된 캐서린 로스도 이혼한 전처 역할로 출연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주인공이 나이가 자신의 절반밖에 안 되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입니다. 인기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에서 알렉스 역할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로라 프레폰이 연기한 샬럿은 사실 대다수 남성의 판타지를 만족시킬 만한 인물입니다. 지적이며 유머 감각 있고 쿨한 여성이 자기의 숨겨진 매력까지 알아봐 준다니 어느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일입니다.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에 현실감을 부여하려고 다양한 방식을 동원합니다. 시상식, 스탠드업 코미디, 시집 같은 모티브가 그런 역할을 담당하지요. 그렇지만, 그런 노력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더할 뿐입니다. ‘다른 건 다 제법 현실적인데 이 로맨스는 뭐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니까요. 나이 많은 남성이 어린 여성을 만나 힘을 얻는다는 설정 자체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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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여럿 떠오릅니다. ‘그때 조금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 때문이죠.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날려 버린 기회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한 아쉬움이 아무리 크더라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제까지와는 다른 삶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묵묵히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나는 과거에 했던 무수히 많은 선택의 결과이며, 짧은 기간 동안 과거의 영향을 모두 지우고 새로워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잘못을 바로잡는 데에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 히어로>에서 주인공 리는 영화 속에서 자기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계기를 맞이합니다. 비록 젊은이들처럼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짧게나마 찾아온 행운 때문에 기대에 부풀지요. 새로운 만남, 화해의 계기, 오랫동안 고대하던 기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화 같은 성공이나 극적인 장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리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결과인 현재의 모습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나가기로 마음먹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꿋꿋이 시간의 무게를 짊어지고 나가면서요. 그는 너무 기대하지도, 쉽게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과거는 후회스럽고 현재도 마뜩잖은 데 미래까지 보이지 않아 막막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 속에서 리가 얻은 결론을 한 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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