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더 머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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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씨네마(주)

유괴 소재 영화는 범죄자와 수사관 사이의 대결을 다루는 일반적인 범죄 영화와는 전개 양상이 다릅니다. 범죄자를 잡는 것 외에 유괴당한 아이를 안전하게 구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죠. 그래서 종종 피해자 가족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올 더 머니> 역시 그런 부류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로마에서 십 대 소년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합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석유 부호인 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손자로서, 어머니 게일(미셸 윌리엄스)과 함께 로마에서 살고 있었죠.

이것이 명백히 몸값을 받아내기 위한 유괴임이 분명해지자 게일은 시아버지 폴 게티에게 몸값을 지불해 줄 것을 간청합니다. 하지만, 세상만사를 ‘거래’로 생각하며 흥정 없이 돈을 지불해 본 적이 없는 그는 몸값을 순순히 내줄 생각이 없습니다. 점점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게일은 시아버지가 붙여준 전직 CIA 요원 플레처(마크 월버그)와 함께 아들을 되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 웰메이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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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씨네마(주)

설정상 극 전체를 끌고 나가는 것은 게일입니다. 그녀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수전노 폴 게티와 무자비하고 끈질긴 유괴범들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미셸 윌리엄스는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딱 부러지는 성격인 게일이란 캐릭터를 탁월한 감정 표현으로 형상화합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정신을 놓아 버릴 것 같다가도 시아버지의 어이없는 행동에 흔들림 없이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특히 자기 뜻과 다르게 협상을 진행하는 플레처의 머리를 수화기로 찍어 버린다거나, 아이의 사진이 실린 이탈리아 신문 1천 부를 한꺼번에 폴 게티에게 보내는 행동은 보는 이를 속 시원하게 만드는 명장면입니다.

폴 게티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연기 역시 돋보입니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속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천부적 협상가의 면모를 잘 표현해내거든요. 원래 이 역할은 케빈 스페이시가 맡아 촬영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지만, 그의 성추행 전력이 드러나자 급하게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하여 재촬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캐스팅 교체가 전화위복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케빈 스페이시가 이 역할을 연기하는 걸 딱히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연기가 뛰어나거든요. 그는 이 영화로 다가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두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가장 눈에 띄지만, 이 영화는 여러 면에서 만듦새가 훌륭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우선 효율적인 각본이 돋보입니다. 실화를 다룬 논픽션 원작의 무수한 세부 사항 중에서 극 전개에 꼭 필요한 것들만 잘 뽑아내서 배치한 것이 특징이죠. 인물의 감정을 충실히 묘사하는 음악도 관객이 극 중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게 돕습니다.

특히 공간의 대비를 활용하여 인물을 규정하고, 인물들 간의 갈등 상황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이 뛰어납니다. 폴 게티의 공간은 규모가 크고 심도가 깊습니다. 게티의 방, 대기 공간으로 사용하는 복도, 변호사들을 대동하고 만나는 회의실 등은 게일을 압박합니다. 반면, 게일의 공간은 비교적 심도가 얕고 늘 신체 접촉이 일어나는 좁은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유괴범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게일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훨씬 더 증폭됩니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망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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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씨네마(주)

손자의 유괴 사건에 대처하는 폴 게티의 태도는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좀 심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은데도 끝까지 밀어붙이거든요. 어쩌면 그렇게 일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자신이 쌓은 부와 권력의 크기를 다른 이들과 비교하게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크게 실패한 남자들이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대개 이런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부끄러운 패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풍요 말고도 더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희생과 헌신, 인격적 존중 같은 인간적 가치들이 그것입니다. 그런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면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의 마음속에서 자기 자리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이만큼 벌어다 줬는데’ 또는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라고 한탄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원인은 다른 데 있으니까요.

해준 만큼 돌려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이제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결정적인 순간에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는지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결정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이 영화 속의 폴 게티처럼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사자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해 타산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식으로 말이죠.

문제를 알았다면, 한시라도 빨리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석유 재벌 폴 게티도 때를 맞추지는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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