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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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네마달

2018. 1. 25. 개봉

2009년 1월에 일어난 용산 참사는 이명박 정권의 비인간성과 자본의 민낯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뉴타운 사업이 철거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지연되자 용역과 공권력을 투입하여 무리하게 진압했고, 그 와중에 일어난 화재는 철거민 5명과 의경 1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법적 책임은 당시 진압을 책임졌던 경찰 지휘부나, 경찰 지휘 책임이 있는 정부가 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옥 같은 불길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철거민들이 그 책임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참사에 원인 제공을 한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됐지요.

<공동정범>은 불공정한 처벌을 감수해야 했던 철거민 중 다섯 명의 출소 후 모습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입니다. 당시 용산4구역 대책위원장으로서 함께 망루에 올랐던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은 여러 언론을 통해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인물입니다. 출소 후에도 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지요.

반면, 다른 네 사람은 용산 지역 철거민이 아닙니다.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소속의 다른 지역 철거민으로, 당시 연대 행동을 목적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용산구 신계동 철거민 김주환, 동작구 상도4동 철거민 천주석, 성남시 단대동 철거민 김창수, 중구 순화동 철거민 지석준이 그들입니다. 이들 모두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아픔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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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네마달

 

솔직한 묘사, 공감으로 이어지다

소수자의 입장을 다루는 작품을 만들 때 창작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은 그들을 지지하는 마음이 앞서 논지를 전개하는 데 유리한 측면만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 치부 같은 불리한 면모를 드러내면 왠지 이들의 정당성이 훼손될 것만 같고, 주장을 스스로 뒤엎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면만 보여주면 짧은 구호나 뉴스 기사 같은 이미지로만 남게 될 뿐, 관객에게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며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 앞설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을 오해하거나 왜곡된 기억을 진짜라고 믿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인간이므로 정당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작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언제나 노동 계급의 문제를 다뤄온 켄 로치 감독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그는 중심인물의 치부나 한계를 보여주는 데 그리 인색하지 않은 편입니다. 오히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그들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죠.

<공동정범>의 감독들이 가장 고민했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도 이런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이충연을 비롯한 용산 쪽 사람들과 다른 지역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적 앙금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들 사이에는 참사 당시는 물론 출소 전후의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기억과 오해, 미안함 같은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창작자로서 이들의 갈등을 아예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싸움은 벌써 사람들로부터 잊혀가고 있는 용산 참사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들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쪽을 택했습니다.

선택의 결과는 좋습니다. <공동정범>은 감정적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영화 속 용산 참사 관련자들의 심정은 그런 상황에 부닥쳤다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것들이니까요. 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은 철거민이 돼 본 적도 없을 테지만, 이들이 서로에게 가진 미안함과 서운함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용산 참사라는 비극의 본질을 다시 한번 직시할 기회를 얻습니다. 그들이 고통을 겪은 이유는 턱도 없는 보상금에 분노해서 싸웠기 때문도 아니고, 다른 지역 문제에 오지랖 넓게 나서서 연대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자본의 편에 서서 공권력을 동원해 주먹을 휘둘렀고, 부당한 판결을 통해 이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은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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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네마달

차이보다 공통점에서 얻는 희망

어떤 모임이나 단체든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공존합니다. 대의와 목적을 위해 효율적으로 움직이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과 연대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지요. 이런 견해차는 종종 다툼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갈등이 노출됩니다.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심을 위한 노력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충연의 태도와 인간적인 관계와 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다른 지역 철거민들의 이야기는 확실히 지향점이 다릅니다.

양쪽 입장은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만으로는 안됩니다. 지나치게 목표 지향적이기만 하면,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지쳐서 떨어져 나가 버립니다. 또한, 인간관계에만 신경 쓰다 보면 일반적인 동호회 모임과 다를 것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요.

사람은 누구나 생각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백 사람이 있으면 백 사람 모두 각자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에만 주목하면 세상에는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차이는 인정하되 공유하는 가치와 목표에 집중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화 <공동정범> 제작에 힘을 보탠 이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용산 참사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 시급히 이뤄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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