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 특별전 (18. 1. 10.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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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독입니다. 2, 30년대 일본 무성 영화의 전성기부터 감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연배가 다소 앞선 미조구치 겐지, 조금 더 어린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일본을 넘어 세계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영화 예술가입니다.

그는 무성 영화 시절부터 세태 풍자극과 가족 드라마에 능했고, 소시민의 일상을 영리하게 포착하여 당대 일반 대중의 평균적인 감성에 호소하면서 숱한 흥행작을 내놓았습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훈훈한 결말로 끝나는 우리나라의 평일 저녁 일일 연속극과 유사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몇몇 작품들은 상투성을 극복하고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인간관계를 제안하고, 인류 보편의 정서와 공명하는 경지에 다다르면서요.

오즈의 영화는 특유의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초기에는 그의 영화도 형식 면에서 다른 극영화들과 차별점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도다 가의 형제자매들>(1941) 같은 영화를 계기로 특유의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다다미 샷’(카메라를 다다미 위에 앉은 인물의 눈높이에 맞춰 세팅하고 촬영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과 정적인 화면 구성은 이때부터 그의 전매특허가 됩니다.

후기작으로 갈수록 인물보다 공간이 중요해지는데, 인물의 심리 상태를 규정하고 미묘한 갈등을 제공하는 배경으로 큰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사용되는 180도 규칙(인물과 인물을 잇는 가상선을 긋고, 각 인물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가상선으로 나뉜 한쪽 구역에만 배치하는 규칙. 이렇게 찍고 편집하면 대화 장면이나 동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은 본래 인물의 시선과 움직임을 일치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대신 전체 공간의 절반을 희생해야 하죠.

그러나, 오즈의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가상선 바로 위에 있고, 인물의 시선은 슬쩍 가상선을 넘어 180도 규칙을 위반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 컷에서 카메라는 어떤 위치에도 놓일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다다미를 중심으로 사방이 트인 형태의 일본 전통 가옥을 보여 주기에 아주 적합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1월 10일부터 28일까지 ‘오즈 야스지로 아카이브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무성 영화 시기의 작품 1편과 전후의 후기작 7편을 포함한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 8편을 상영합니다. 상영작 모두 서울아트시네마와 부산 영화의전당이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는 상영작 중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 3편을 골라 소개합니다. 더욱 자세한 상영 일정과 작품 소개는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http://www.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main.php)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맥추>(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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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치쿠 필름

도쿄의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28세의 노리코(하라 세츠코)는 도쿄 근교 가마쿠라에서 부모님과 오빠 부부, 조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회사의 전무는 그녀에게 좋은 혼처가 있다며 소개하지만, 딱히 마음이 가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가 호감을 느낀 이웃에 사는 의사 야베입니다. 아내를 일찍 여의고 외동딸을 봐 줄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는 전쟁에 나갔다가 연락이 끊긴 둘째 오빠의 친구이기도 합니다.

3대가 모여 사는 노리코 가족의 자연스러운 해체를 다룬 이 작품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기대를 배반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 자식의 선택이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부모, 새로운 삶의 계기로서 의의가 있는 결혼,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현명함, 재치있는 대사와 슬랩스틱 코미디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흔히 오즈 야스지로는 냉혹한 사회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양식화된 설정의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작가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영화처럼 일본의 가족 제도가 시대에 맞게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모나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이상의 월권을 삼가는 현대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 단골로 출연하는 하라 세츠코는 이 작품에서 재치 있고 발랄하며 주체적인 신여성 노리코를 멋지게 연기합니다. 오즈의 다른 작품에서는 주로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는 여성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풍부한 감정 표현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여성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동경 이야기>(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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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치쿠 필름

시골에 사는 히라야마(류 치슈)는 장성해서 도쿄에 자리를 잡은 자식들을 만나러 아내와 함께 상경합니다. 의사인 아들과 미용실을 하는 딸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아무래도 각자의 생활이 우선이다 보니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언제나 뒷전입니다. 반면,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둘째 아들의 미망인인 노리코(하라 세츠코)는 정성을 다해 그들을 모십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자식 세대의 불효를 꼬집고 며느리의 효심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이 영화 역시 오즈의 다른 영화들처럼 변화한 세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세를 취합니다. 그리하여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개념인 ‘효’가 보편적인 인간애로 발전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지요.

공간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도쿄에서 노부부가 머무는 공간들은 그들의 처지와 심리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아들 집과 딸의 집, 아타미 온천 여관 등의 공간 구성은 그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고립시킵니다. 반면, 노리코와 함께 하는 시내 관광 시퀀스는 사방이 트인 공간을 통해 해방감을 선사하죠. 단순하고 작은 그녀의 아파트는 노부부에게 따뜻한 인간애를 전하는 공간이 되어줍니다.

오즈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여 존재 자체로 감독의 영화 세계를 상징하는 배우들인 류 치슈, 스기무라 하루코, 미야케 쿠니코, 하라 세츠코 등이 특유의 개성을 자랑하는 것도 눈여겨 봐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과 유사한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연기하며 감독의 작업을 오랜 기간 든든하게 뒷받침했으니까요.

<꽁치의 맛>(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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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치쿠 필름

어느 공장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히라야마(류 치슈)는 아내를 여의고 딸 미치코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미치코(이와시타 시마)에게 적당한 혼처를 제안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는 딸이 아직 결혼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중학 시절 은사와 술자리를 갖고 그를 집에 바래다주다가, 은사의 딸이 아버지를 보살피다가 혼기를 놓친 채 그대로 나이를 먹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이를 계기로 히라야마는 미치코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혼자된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같이 살고 있던 딸을 시집보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만춘>(1949)이나 <가을 햇살>(1960) 같은 전작들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앞선 두 작품이 부모의 재혼 여부를 매개로 사건을 진전시키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아버지의 심리 변화가 중심입니다. 감독 특유의 해학과 페이소스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 다양한 에피소드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마음에 크고 작은 파문을 남깁니다.

이 작품에서도 공간은 역시 중요합니다. 세대별로 취향과 분위기에 따라 확연하게 다른 술집과 요릿집, 전통 가옥과 아파트, 사무 공간 등이 등장하지요. 이를 통해 불과 몇십 년 차이로 사회가 빠르게 변화했고, 사람들의 취향도 달라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일입니다. 이런 관점은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와 그 친구들이 서로를 놀려 먹기 위해 준비하는 두 개의 거짓말을 통해 명시적으로 드러납니다.

알려진 대로 이 작품은 오즈 야스지로의 유작입니다. 매우 정제된 양식과 현대적인 주제 의식은 그의 작가적 역량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지요. 이 영화가 개봉한 이듬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즈 야스지로가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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