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Coco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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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18. 1. 11. 개봉

젊어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지만, 돈을 제대로 못 벌어 생활이 안 됐기 때문에 그만뒀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자기 삶을 점점 더 중요시하는 세태이긴 하지만, 경제적 빈곤은 부모나 가족을 부양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니까요.

보통 젊은 시절의 꿈은 대부분 음악이나 영화, 게임 같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분야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애초의 기대만큼 화려한 삶과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성공 확률도 낮고 수입의 빈부 격차도 큽니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혹은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에 비례하여 성과가 나는 분야도 아니죠.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코코>의 주인공 미겔(안소니 곤잘레스)의 꿈도 음악입니다. 열정이 있고 재능도 뛰어난 편입니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살림을 외면하고 꿈을 이루겠다며 집을 나간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음악이라면 질색을 합니다. 홀로 남은 고조할머니가 신발 만들기를 통해 집안을 일으킨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래도 미겔은 곧 다가올 멕시코의 명절 ‘죽은 자들의 날’에 있을 마을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합니다. 집안 어른들에게 들켜 기타가 부서지는 바람에 출전 자체를 못 하게 된 그는, 평소 동경하던 같은 동네 출신의 전설적 가수 에르네스토의 묘지에 가서 기타에 손을 댔다가 그만 ‘죽은 자들의 세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화려한 색감과 상상력 돋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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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멕시코의 전통적 사후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점입니다. 사진이 있어야 후손들에게 찾아올 수 있다는 설정과 뼈다귀로 구현된 죽은 자들, 사후 세계를 상징하는 마리골드 꽃잎과 알레브리헤의 뛰어난 색감은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찾아온다고 믿는 ‘죽은 자들의 날’ 풍습 역시 우리나라의 제사나 차례에 담긴 생각과 유사한 점이 있어 좀 더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 영화의 각본이 딱히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 전체의 갈등 구도가 효과적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거든요. 일단, 미겔이 자기 가족의 내력을 소개할 때부터 명시적으로 설정된 것은 자기실현을 위한 꿈과 그것을 가로막는 현실적 조건 사이의 갈등입니다.

이 과정에서 음악을 하는 것과 수제 구두 만드는 일이 대립물로 설정됩니다. 언뜻 보기에는 음악을 하는 것은 예술 행위 같고 수제 구두를 만드는 일은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 같죠. 그런데, 사실 이것은 제대로 된 대립 관계를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미겔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나 그의 가족이 가업으로 이어온 수제 구두 제작은 둘 다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예술 활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극 중에서 미겔이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에르네스토처럼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그럴 재능이 충분하다는 자신감 때문이지요. 따라서 ’미적 무관심성’이라는 유미주의적 기준에 의하면 예술 활동이라고 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직업이 음악가라고 해서 모두가 ‘예술가’는 아닌 것처럼요.

수제 구두를 만드는 일 역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대대로 이어온 숙련된 기술을 통해 구두를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창조적인 행위입니다. 미겔의 가족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물건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대로 이어온 기술을 갖고 구두를 손으로 만들죠. 이렇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쏟아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술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악가와 제화공의 삶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더 많습니다. 예술 활동 그 자체에 탐닉하는 유미주의로 빠지지도 않고, 이윤 추구에 매몰되지도 않으니까요. 둘의 차이는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 정도의 갈등을 일으킬 만한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태도에서도 미겔과 그의 가족은 큰 차이점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집을 뛰쳐나간 미겔의 선택이 가족주의를 거부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자신에게 위대한 음악가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증명하고 진정한 조상을 찾아내고 기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혈연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물려받은 재능의 힘을 믿는다는 점에서 미겔은 가족주의를 배척하기보다는 심화,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지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는 대립과 갈등이 잘 설정돼 있어야 합니다. 이야기의 모든 요소가 갈등 관계를 바탕으로 구성되어야, 어색하거나 작위적인 느낌이 덜하니까요. 그러나 <코코>에서는 미겔의 여정을 위해 설정된 갈등 구도가 선명하지 못한 탓에 이야기 진행이 그리 매끄럽지가 않습니다. 중요한 국면 전환이 거의 모두 우연이나 임기응변을 통하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코코>의 이야기에도 훌륭한 대립적인 가치가 존재합니다. 주제가인 <Remember Me>로 대표되는 ‘망각’과 ‘기억’의 문제입니다. 다만 이야기 내내 미겔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좀 더 비중 있게 다뤄지다 보니,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요소로 작용하지 못할 뿐입니다. 내내 서브플롯처럼 존재하다가 결말쯤 가서야 뒤늦게 진가를 드러내거든요.

가족주의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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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인간은 누구나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며, 그것을 자손에게 되돌려 주게 됩니다. 물론, 이 사랑의 기억은 꼭 피를 나눈 자손에게만 향하지는 않습니다. 공동체 내의 다른 사람, 나아가서는 반려동물이나 식물 같은 다른 생명체에게도 보살핌과 격려를 건넬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코코>에서는 가족 내부의 잊힌 전통을 살려내고 그것이 올바른 평가를 받게 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이를 통해 가족 내부의 질서와 사랑은 강화되고 자부심은 높아지죠. 재발견된 가족의 가치는 개인의 일탈을 극복하고 더 탄탄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서 소외되는 것은 내세울 만한 가족이 없거나, 가족으로부터 심각한 피해를 본 사람들입니다. 위대한 재능을 가진 조상이 없거나, 가업으로 이을 만한 사업도 없는 사람들, 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학대를 일삼은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들은 어디서 위안과 자부심을 얻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답은 본편에 앞서 상영된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에 있습니다. 비록 <겨울왕국>의 외전으로서 기존 영화의 요소를 재활용하고 있지만 – 역으로 <겨울왕국>의 팬에게는 그래서 또 다른 선물을 받은 것 같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일반적인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가족끼리 보낼 크리스마스 전통이 없는 엘사와 안나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주고 싶어 노력하는 올라프의 모습, 그런 존재 자체가 두 자매에게 선물이자 전통이었다는 이야기가 강조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가족끼리 나눈 관심과 사랑은 혈연관계와 과거의 역사를 뛰어넘어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 정신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거죠. <코코>에 담긴 메시지의 한계는 이런 식의 확장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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