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파는 가게 –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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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스티븐 킹은 호러나 판타지를 쓰는 작가라고 한정 짓기에는 좀 아쉬운 작가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담백한 성장 영화인 <스탠 바이 미>와 불행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성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쇼생크 탈출>, 그리고 공포 영화 사상 북미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그것>의 원작자가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죠.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일군 원동력은 하루 8시간씩 매일 빠짐없이 글을 쓰는 성실함입니다. 올해로 70세를 맞았지만, 거의 매년 장편 소설을 출간하는 그의 생산성은 다른 작가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또한, ‘이야기의 제왕’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수준급의 중편이나 단편도 많이 썼습니다. 그중에는 영화화된 작품도 많지요.

이번에 나온 <악몽을 파는 가게>는 스티븐 킹이 2000년대 후반 이후 최근까지 각종 지면에 발표한 단편 20편을 모은 책입니다. 작가의 필생 화두인 ‘죽음’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길이와 형식을 갖춘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총 20편 중 절반 정도는 기존의 스티븐 킹 장편 소설에서 그대로 따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작가가 자주 다루는 유형의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친숙한 독자라면 더욱 반갑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먹어치우는 괴물 차가 등장하는 <130킬로미터>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그것>의 악마를 만났다고 하면 딱 맞을 <못된 꼬맹이> 같은 작품이 그렇습니다. 특유의 ‘도시 전설’(urban legend) 풍 이야기인 <철벽 빌리>, <부고>, <취중 폭죽놀이> 등도 기존 독자들이 사랑할 만한 작품입니다.

또 다른 절반은 좀 더 짧은 소설들로, ‘이게 정말 스티븐 킹 작품이냐?’는 질문이 곧바로 튀어나올 만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흔히 ‘순수 소설 작가’로 분류되는 사람들 못지않은 필력과, 번득이는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특히 레이먼드 카버의 스타일로 써 본 <프리미엄 하모니>, 죽음을 앞둔 인간의 아이러니를 다룬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시적인 아포칼립스 물 <여름 천둥> 같은 작품들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작품마다 착상하게 된 이유나 이야기에 얽힌 사연을 짤막하게 소개하는 작가의 논평이 붙어 있는데, 이걸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작가 자신의 세계관과 소설관, 그와 일상과 직업 세계를 함께 해 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진솔하게 술회하기 때문이죠. 작품마다 맨 끝에 일일이 ‘누구누구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달아 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븐 킹 작품 근간에 자리 잡은 휴머니즘입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루기 때문에 장르 상 호러로 분류할 수 있지만, 단순히 공포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골몰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무력화되는 인간의 삶입니다. 친구나 가족으로부터 얻는 위안, 필생의 짜릿한 사랑, 생판 처음 본 사람들 사이에도 존재하는 선의 같은 인간적 가치들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와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완전히 잃어버립니다.

여기서 느끼는 상실감과 허무가 바로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 공포와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됩니다. 그에게는 죽음의 절대성 앞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이 있습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두려움과 공포를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했을 겁니다.

흔히 공포나 스릴러 소설은 소름 돋는 독서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에 여름이나 초가을에 읽기 좋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악몽을 파는 가게>만큼은 스산한 겨울에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무서운 현실은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알려 주는 동시에, 우리 곁의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따뜻한 인간적 온기가 지닌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주니까요. 아무리 추워도 우리의 마음까지 얼어붙지는 않는다는 사실, 이 책과 함께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악몽을 파는 가게 1,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 (2017.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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