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Testrol es lelekro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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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공기와 물, 음식 외에 필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타인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꼽고 싶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나 동료 같은 주위 사람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합니다.

이 ‘상호 관계’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물리적인 차원의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는 차원에 그쳐서도 안 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우리는 균형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뜻하지 않은 인연으로 자신들의 불완전한 인간 관계를 되돌아보게 된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도축업체의 재정 담당 임원인 엔드레(게자 모르산이)는 새로 온 품질 관리 담당자 마리어(알렉상드라 보르벨리)에 관한 다른 직원들의 불만 사항을 듣게 됩니다.

불평의 주된 내용은 그녀가 다른 직원들과의 인간관계에 일절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밥도 혼자 먹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는커녕 커피 한 잔도 같이 안 마십니다. 게다가 주 업무인 육질 등급 판정도 규정을 너무 곧이곧대로 적용하는 바람에, 이 업체가 생산하는 고급육이 줄어드는 문제까지 생깁니다.

엔드레는 마리어의 어색함을 풀어 주려고 사내 식당에서 일부러 같은 자리에 앉았다가 그녀의 냉담한 반응에 벽을 느낍니다. 품질 판정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고 커피 한잔하자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은 꿈속에서 함께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하루하루 전날 밤 꿈속에서 본 장면들을 비교하며 신기해하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각자 너무 다른 삶의 방식은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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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곧이곧대로인 여자 vs 삶이 공허한 남자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마리어의 성격일 것입니다. 사회성이 무척 떨어지고 정해진 규칙과 루틴대로 살아야 맘이 편한 그녀는 일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지 구조와 행동 양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나누는 잡담이나 감정 표현도 그녀에겐 참으로 힘든 과제입니다.

여러 면에서 마리어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여성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녀가 겪는 일들은 아스퍼거 여성의 삶을 자세하게 다룬 프랑스 그래픽 노블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쥘리 다셰 지음)에 나온 일화들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합니다.

마리어는 엔드레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자신도 어찌해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반면, 엔드레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는 우리가 모두 그렇듯 적당히 진실을 숨길 줄도 알고, 대부분 겉치레에 불과한 사교적 기술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과 쉽게 사귈 수 있지요. 하지만, 그중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관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일종의 소울메이트인 마리어와 진심 어린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그 역시 변해야 합니다. 자기가 뭐든 다 안다는 식의 태도와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상대의 진심을 헤아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죠. 그가 선입견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마음을 열 때, 이제껏 그의 삶에 뿌리내리지 못했던 행복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감독 일디코 엔예디는 헝가리의 중견 여성 감독으로 90년대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자국의 영화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단편 2편과 미국 드라마 <인 트리트먼트>의 헝가리 버전을 제작하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는 장편 프로젝트 5개가 무산된 끝에 내놓은, 18년 만의 장편입니다.

차갑고 절제된 화면 구성과 편집, 사운드는 소통을 위해 뜨겁게 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날카로운 대비를 이룹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계산된 장면들에서 감독의 연출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은 영예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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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

소통과 이해는 모두의 꿈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도축업체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무척 깔끔하고 정돈된 공간입니다. 산업화는 모든 것을 전문가적인 작업 공정과 선진적인 관리 방식으로 탈바꿈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피와 살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도살장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이곳은 그 자체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적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자기 나름의 방식을 세련화합니다. 적당히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면서 그럴듯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가지요. 여기에는 진심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여전히 소통하고 이해받고자 하는 뜨거운 욕구가 남아 있지요. 한 명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상대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 인간적 교류가 없는, 껍데기만 남은 삶은 지독한 권태와 외로움을 남길 뿐이니까요.

우리는 어떻게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방식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말이죠. 여기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랜 시간 습관처럼 굳어진, 사회생활 하던 방식으로는 나의 진심을 전하기는커녕, 상대의 진심을 느끼지도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만한 가치는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노력 자체가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니까요. 이 영화 속에서 마리어와 엔드레가 겪은 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같은 꿈을 꿉니다. 소통과 이해라는 이름의 꿈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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