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열정 A Quiet Compassio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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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씨드

2017. 11. 23. 개봉

 

19세기 중반의 미국 시인인 에밀리 디킨슨은 영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현대적인 형식과 압축적인 시어, 깊이 있는 지적 성찰이 돋보이는 그녀의 시는 지금의 눈으로 봐도 참신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여성 문학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성은 훌륭한 문학가가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여성 시인은 목가적인 연애시나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요. 에밀리 디킨슨 역시 그런 말랑말랑한 시를 좀 써 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시는 달랐습니다. 종교와 가부장제의 억압에 대한 분노, 종교적 구원에 대한 의문, 사랑과 죽음의 문제 등을 특유의 반어법과 공격적인 묘사를 통해 드러내 보였으니까요. 형식 면에서도 띄어쓰기와 대소문자 구분 무시, 음악적 효과를 살리기 위한 잦은 대시(—) 의 활용 등 매우 현대적인 외양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그녀의 시 1775편 중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 일곱 편에 불과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시인의 삶

<조용한 열정>은 이런 에밀리 디킨슨의 삶과 작품 세계를 차분하게 스크린에 옮긴 작품입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으라는 청교도의 도그마를 강요하는 대학을 관둔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그녀는 평생 고향 집에서 권위적인 아버지, 무기력하며 우울한 어머니, 영리하고 죽이 잘 맞는 오빠 및 동생과 함께 살면서 꾸준히 자기만의 시를 써 내려 갑니다.

영화는 에밀리 디킨슨의 성격과 작품 세계를 잘 극화한 편입니다. 재치있고 지적인 농담을 주고  받을 줄 알았던 디킨슨 삼 남매의 우애 깊은 모습,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기독교에 대한 분노를 보여주는 일화들, 때로 가혹하고 공격적으로 돌변하기도 했던 디킨슨 자신의 성격 등이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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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씨드

특히 늘 함께하며 때로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던 동생 비니, 재기 넘치는 대화로 즐거움을 주었던 버팸, 친구이자 오빠의 아내로서 마음을 나누었던 수전 등 디킨슨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연대를 부각한 것이 돋보입니다. 간간히 내레이션으로 들어간 디킨슨의 시들은 이러한 일화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이 영화만의 개성을 더해 줍니다.

다만, 인물이 소개되고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는 흥미진진한 초반부와 달리, 중반 이후부터는 이야기로서 재미가 다소 떨어집니다. 말년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고립을 자처했던 디킨슨의 내면에 집중하기 때문이죠.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는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자전적 소재의 초기작들과 이디스 워튼의 원작을 각색한 <환희의 집>(2000), 리버풀에 관한 다큐멘터리 <Of Time and the City>(2008) 등이 유명합니다. 재작년에 정식 개봉한 레이첼 바이스, 톰 히들스턴 주연의 <더 딥 블루 씨>(2011)의 감독이기도 하죠.

늘 자기 작품의 각본을 직접 쓰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전기 여섯 권을 바탕으로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면 그녀의 시가 보여주는 개성이 어떤 개인적 삶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인기 미국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미란다 역할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신시아 닉슨은 성인 시절의 에밀리 역할을 효과적으로 연기합니다. 미세한 표정 변화로 보여 주는 섬세한 감정 변화부터,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격하고 신경질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에밀리 디킨슨의 다양한 면모를 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기만의 무언가를 위해 사는 예술가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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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씨드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만의 개성입니다. 이것은 그의 개별적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서, 특유의 세계관과 예술적 표현 양식의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극소수의 ‘르네상스 맨’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자신이 잘 하는 주제와 장르에 천착하며 일생을 보내게 됩니다.

에밀리 디킨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고유한 시각과 표현 양식을 오랫동안 갈고 닦아 진작부터 시대를 앞서 나갔지요. 시대가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려고 했고, 자신만의 생활 방식과 시각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흔히 에밀리 디킨슨이 평생 집을 벗어나지 않고 혼자 살았다고 해서 ‘은둔과 슬픔의 시인’이라고만 여기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렇지만, 말년에 흰옷을 고집하며 혼자 지냈던 기간을 제외하면 일부러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지내면서 고독을 씹었던 적은 없습니다.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직업상 다양한 사람들이 집에 들락거렸는데, 이때 무기력하게 자리보전했던 어머니를 대신해 손님을 맞이하는 안주인 역할을 해야 했지요. 당대의 지식인들과도 잦은 편지 왕래를 통해 친분을 쌓고 생각을 교류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집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와 결혼하기라도 하면 아버지와 협상을 통해 얻어낸 새벽 글쓰기 시간은 물론이고, 생각의 자유까지 제한받을 우려가 있었으니까요.

그녀의 평생에 걸친 분투는 사후 동생 비니가 정리해서 출판한 시편들로 남았습니다. 비록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까지는 그로부터 또 수십 년이 걸리게 되지만, 그녀의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내며 세상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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