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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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2017. 11. 9. 개봉

영화 흥행에서 마케팅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 계속 영화에 관한 정보를 노출해 인지도를 높이고, 사람들이 영화에 기대를 하게 합니다. 그러나 본편이 홍보 방향과 다른 느낌이거나, 예상보다 기대에 못 미치면 개봉 후 입소문이 퍼지는 과정에서 역효과가 나는 것이 십상입니다.

이 영화 <미옥>은 김혜수를 전면에 내세워 ‘여성 액션 누아르’로 홍보된 영화입니다. 조직의 보스 김 회장(최무성)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이인자 현정(김혜수)은 조직을 키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면서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끌어왔습니다. 그런 현정 옆에는 상훈(이선균)이 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조직의 더러운 일은 도맡아 해결하는 게 특기인 그는, 현정에 대한 순정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습니다.

한편, 검사 최대식(이희준)은 현정이 파 놓은 덫에 걸려 큰 약점을 잡힌 상태입니다. 그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상훈을 찾아갑니다. 상훈의 취약점인 현정에 대한 감정을 이용하기 위해서죠. 최 검사의 의도대로 상훈은 그때부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조급한 전개와 실패한 마케팅

영화의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주요 인물인 현정-상훈-대식의 욕망과 목표가 확실하게 제시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드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고,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드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문제입니다. 상황 전개가 너무 쉽고 빠릅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한 플롯과 결말을 답습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해진 순서로 진행되는 것을 최대한 늦추면서 관객의 예측을 영리하게 배반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재미가 생깁니다. 지금처럼 제작진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한시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어 하는 조급함을 내비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날 개봉한 <해피 데스데이>와 비교하면 이 영화의 문제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지요. 그 영화도 역시 뻔한 이야기 구조로 돼 있지만, 관객이 주인공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할 시간을 주고 그 성격에 맞게 차근차근 전개해 나간 덕분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마케팅입니다.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 원래 제목이었던 <소중한 여인>에서 <미옥>으로 바꿔 가면서 ’여성 액션 누아르’로 홍보한 것은 애초부터 무리수였습니다. 이 영화는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문제에 하나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 좋아할 장면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도입 시퀀스부터 결말까지 온통 남성의 관음증과 성적 욕망, 상처 입은 수컷이 품는 복수심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요.

이런 영화를 김혜수의 멋지게 변신한 모습을 앞세워, 여성 액션 영화로 홍보했으니 흥행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된 타깃이 될 만한 남성들은 아예 건너뛰게 만들고,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기대하고 간 관객들은 크게 실망하게 됐으니까요.

볼 만한 액션 영화가 되려면

사실, 이 영화는 90년대에 많이 나왔던 한국 조폭 영화와 유사합니다. 잘 나가던 조폭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곤경에 처한다는 스토리가 똑같습니다. 거기서 중심인물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런 영화들의 문제는 잔혹한 세상의 논리 앞에서 불가능한 싸움을 하는 주인공 한 사람의 운명을 연민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기만 하는 데 그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정말 안타깝다’는 식의 평범한 현실 인식과 함께, 창작자의 자기 연민까지 섞어 놓은 영화를 재미있게 봐 주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액션 영화가 대중적인 재미를 획득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온 세상과 맞서 싸워도 이길만 한 초인적인 능력을 주인공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존 윅>이나 <아저씨>, <테이큰>같이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멋진 주인공을 내세워, 한때 고초를 겪기는 하지만 결국은 승리하는 이야기로 만드는 거죠.

다른 하나는 잔혹한 세상의 논리와 맞서는 대안적인 세계관을 내세워 가치의 대결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의리나 우정, 직업윤리 등을 지키기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영웅본색>이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부산행> 같은 영화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경우에는 주인공이 간혹 실패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대안적가치가 높이 평가받거나 빛나면 되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옥>은 이도 저도 아닌 영화입니다. 현정은 싸움의 신으로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류 질서와 가치 대결을 펼치지도 않지요. 현정을 더 냉혹한 인물로 만들어 남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싸우도록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 영화에 더욱 더 어울리는 것은 남성의 방식과 여성의 방식을 대립시키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유아적인 남자들인 상훈과 최 검사는 그 자체로 남성 중심적인 세계 질서의 폐해를 상징합니다. 그들 앞에서는 의리도 사업도, 인간으로서의 예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에 비교해, 현정을 아끼고 도와주는 웨이(오하늬)와 김 여사(안소영)의 태도는 완전히 다릅니다. 현정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언제든지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된 이들의 모습은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진’ 세상에서 희망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제작진은 이런 대립 구조를 두드러지게 보여 줄 생각을 못 한 것 같습니다. 여성 인물들 사이의 감정선과 그들의 연대를 보여 주는 일화들을 더 많이 보여 주면서 균형을 잡았다면 이야기의 재미가 더 살고 메시지도 완전히 달라졌겠죠. 하지만, <미옥>은 사건의 발단이 되는 상훈의 감정을 너무 중요하게 취급합니다. 그래서 철 지난 조폭 액션물 이상의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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