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하는 제국 – 콜린 우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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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지음, 정유진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17. 7. 5.)

초등학교 시절 재밌게 본 드라마 중에 <남과 북>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당시 KBS를 통해 방영됐었는데 미국 남북 전쟁이 배경이었죠. 이를 무척 재밌게 봤던 저는 당시 미국 남부와 북부의 사회 분위기가 판이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워낙 넓은 나라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다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지요.

이렇듯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미국 지역 사회의 모습은 무척 다양합니다. 같은 동부 해안 도시인 뉴욕과 보스턴만 해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중부의 농업지대, 미시시피강 유역의 남부 지방. 멕시코 접경지대 등도 가치관이나 생활 양식이 다른 지역과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미국 대선 결과를 정리한 지도를 보면, 지역적 특성이 그대로 선거 결과에 반영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선거 때마다 빨강과 파랑으로 표시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 지역들은 절대로 지지 정당이 바뀌지 않는 지역과 이슈에 따라 지지가 바뀌는 지역으로 확연히 갈라지곤 합니다.

미국의 지역별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분열하는 제국>은 이런 궁금증을 지닌 사람들의 의문에 답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콜린 우다드는 그간의 지역별로 이뤄졌던 연구 성과를 모아, 미국 영토를 고유한 특성을 지닌 11개 민족 집단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역사는 이들 사이의 끊임없는 경쟁과 연대의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최초로 북미 대륙에 흘러들어왔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각자의 영토를 지키며 치열한 문화 전쟁을 벌여 왔다는 것이지요.

전체 28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시대에 따라 4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각 초기 정착기, 미국 독립 전쟁의 막전막후, 서부 개척 시대와 남북 전쟁 시기, 현대의 문화 전쟁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마치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합종연횡을 연상시키는 흥미진진한 서술이 인상적입니다.

먼저 1부에서는 각 민족 집단들이 북미 대륙에 들어오게 된 연유와 각각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특징을 시대순으로 잘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이민자들이 만든 사회는 출신 국가와 민족의 성향에 따라 다른 개성을 지녔고, 그것이 아직도 지역별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온 청교도가 미국의 선조’라는 얘기는 뉴잉글랜드 지역에 국한된,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합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그룹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동북부에 정착한 앵글로 색슨 청교도들인 양키덤(Yankeedom)과 뉴욕을 중심으로 자유 무역과 자본주의를 중시했던 뉴네덜란드(New Netherland), 영국의 봉건 지주인 젠트리 계급 사회를 꿈꾼 타이드워터(Tidewater)와 노예제 기반의 귀족 사회를 만들었던 남부 플랜테이션 농업 지대의 디프 사우스(Deep South) 등입니다.

2부에서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미국 독립 전쟁이 영국의 수탈에 대항한 북미 식민지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나마 양키덤이 가장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뿐입니다. 나머지 지역은 각자 자신의 이익에 맞게 영국에 대해 양면적인 감정이 있거나, 아예 독립을 원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각기 다른 이유로 영국과 전쟁을 치른 끝에 연방 국가가 되기로 합의하여 독립을 맞습니다. 그 후에도 내부 다툼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연방 정부는 그레이터 애팔래치아(Greater Appalachia) 같은 특정 지역을 경제적으로 혹독하게 수탈했고, 분리 독립 움직임을 잔혹하게 진압했습니다. 또한, 지역에 따라 연방 헌법을 자기네 이익에 맞게 고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습니다.

3부에서는 각 민족 집단이 서부 개척에 나서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산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에 따라 태평양 연안의 레프트코스트(The Left Coast)와 로키산맥 동쪽의 파웨스트(The Far West) 같은 새로운 민족 집단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또한, 디프사우스 중심의 남부 연합이 강경파의 오판으로 연방군을 선제공격하고 중도파 지역의 민심을 잃은 끝에 패배하는 남북 전쟁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중도파 지역은 남부의 평화적인 분리 독립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전쟁에는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마지막 4부는 남북전쟁 후 현대까지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총성 없는 문화 전쟁에 관한 내용입니다. 양키덤을 중심으로 한 북부 연합과 디프사우스를 중심으로 한 남부 연합은 첨예하게 대립을 계속해 왔습니다

진보적인 북부 연합은 정부 개입을 옹호하고 공공복리를 우선하며 대외 불개입을 옹호합니다. 그와 정반대로 보수적인 남부 연합은 개인의 자유와 개별 기업의 이익 보장, 적극적인 대외 개입을 찬성하지요. 이들은 사안에 따라 부동층 지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정치적 승리를 거두곤 했습니다.

<분열하는 제국>은 미국 사회의 지역별 특성과 역학 관계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미국 사회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둘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앞으로 미국의 정치 경제 뉴스를 보거나 예술 작품 등에 투영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자 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우리나라 정치의 후진성을 논하면서 지역감정을 예로 듭니다. 하지만, 지역감정이라는 것 자체는 어느 나라에나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연환경, 지역이 겪은 정치적 사건, 사회 경제적 발전 과정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죠.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차이를 부추겨서 자기의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극단주의자들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도 승자가 상대방의 가치를 완전히 허물고 자기 쪽으로 복속시키려고 시도할 때 언제나 반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진보적 이상을 가진 양키덤도 19세기 남북 전쟁과 20세기 흑인 민권 운동에서 승리했지만, 무리하게 자신들의 가치를 확산시키려다가 역풍을 맞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도 어떻게 하면 다른 집단에 속한 국민들과 타협점을 찾느냐입니다. 자기 색깔만으로는 비슷한 톤의 반쪽짜리 그림만 나올 뿐입니다. 특히, 절대 변하지 않는 상대와 싸우면서 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이상을 다채롭게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겠지요.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는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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