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데스데이 Happy Death Day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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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I 코리아

2017. 11. 8. 개봉

타임 루프는 이야기 속 주인공이 특정 시간대를 반복해서 경험하게 만드는 플롯 상의 장치입니다. 이 장치를 사용하는 이야기라면, 주인공의 목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은 반복된 경험을 모두 기억하고, 거기서 학습한 것을 통해 상황을 타개할 기회를 잡게 되지요.

이 장치를 사용한 영화 중에 고전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단연 빌 머레이가 열연한 <사랑의 블랙홀>(1993)입니다. 오만한 난봉꾼 기상 해설자가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 후에야 루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의 훈훈한 로맨스물이었죠. 최근에는 톰 크루즈와 에밀리 블런트가 나온 화끈한 액션물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5)가 크게 성공한 바 있습니다.

<해피 데스데이>는 타임 루프 설정을 공포물에 제대로 접목해 효과를 톡톡히 본 영화입니다. 예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성격 나쁜 여대생 트리(제시카 로스)는 생일날 아침 생전 처음 본 남학생의 방에서 깨어납니다. 그녀는 전날 파티에서 만취한 탓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긴 하지만,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트리에게는 잔혹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학교 마스코트인 ‘베이비’ 가면을 쓴 괴한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해 죽임을 당하거든요. 살해되자마자 악몽에서 깨어나듯 곧바로 아침의 남학생 방으로 돌아온 트리는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그냥 꿈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또다시 죽음이 찾아옵니다. 트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코믹 터치의 슬래셔 영화

이 영화의 제작사 블룸하우스는 <파라노멀 액티비티> 시리즈와 <인시디어스> 시리즈로 큰 수익을 내며 공포 영화의 명가로 자리 잡은 회사입니다. 최근에는 <23 아이덴티티><겟 아웃> 등 색다른 매력을 갖춘 영화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해피 데스데이> 역시 기존과는 다른 재미를 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기본 장르는 슬래셔물입니다. 칼질을 주 무기로 사용하는 범인이 여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하고 살해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짜여 있으니까요. 피해자 한 명이 반복적으로 살해당한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렇다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끔찍하고 암울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루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런 유머를 잘 살렸기 때문에, 가벼운 농담처럼 느껴지는 쪽에 가깝습니다. 오프닝 크레딧에서 유니버설 영화사 로고를 반복해서 띄워 웃음을 자아내는 것만 봐도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지요.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주요 쟁점이 된다는 점에서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볼 수도 있습니다. 관객은 트리와 함께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누구일지 따져 보는 재미를 맛보게 됩니다. 물론 언제나처럼 반전은 있지만, 아무 근거 없는 깜짝쇼가 아니라 미리 설정된 복선들과 연결돼 있어서 나름 맞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주인공 트리 역을 맡아 극 전체를 이끈 제시카 로스는 성격 안 좋고 콧대 높은 깍쟁이부터 공황 상태에 빠진 모습, 그리고 살인마와 당차게 맞서 싸우는 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소싯적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친근감 있는 이미지의 그녀는, 영화와 TV 드라마 단역부터 출발하여 이제 막 작은 영화의 주연급으로 올라선 배우입니다.

감독 크리스토퍼 랜던은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 2편부터 5편까지의 각본을 담당하며 시리즈의 인기에 한몫을 한 바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무난한 연출력을 보여 주었는데, 특히 추리에는 별 재능 없는 주인공 캐릭터 설정에 맞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 것이 현실성 있게 다가왔습니다

시간 반복과 탈출의 의미

타임 루프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시간 반복 현상에 빠진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 겪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는 누구나 반복된 경험을 통해 성숙해지고 변모할 수 있다는 인간사의 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랑의 블랙홀>처럼 주인공이 자기의 기존 삶의 방식을 돌아보고 성찰할 기회를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반복 학습을 통해 기술적으로 숙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방식 모두 자기희생을 통해 진정한 성장을 증명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전자에 속합니다. 시간 반복을 단지 플롯 측면에서 재미를 위한 설정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주인공 트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로 삼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실한 사랑을 찾는 결말로 이어지지요.

그런 면에서 <사랑의 블랙홀>을 슬쩍 비틀어 놓은 영화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세부적으로도 베개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종탑 장면처럼 거의 유사한 설정이 존재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중에 <사랑의 블랙홀>을 직접 언급하게 한 것도 오마주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크게 다르지도 않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냅니다. 이 ‘쳇바퀴’를 유사 타임 루프라고 생각한다면, 타임 루프물은 반복되는 일상이란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변화를 꾀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한 개인의 삶은 그가 한 무수히 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니까요.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여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해나간다면 어떻게든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만든 타임 루프물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어쩌면 이렇게 현실에 관한 직접적이면서도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가벼운 오락물로 기획된 영화이지만, <해피 데스데이>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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