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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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터테인먼트

2017. 11. 2. 개봉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영화 투자 배급 회사에서 신작 영화에 투자를 결정할 때에는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쓰는 결정인 만큼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감독, 주연 배우들의 이름값, 해당 영화를 제작할 회사의 능력 등 해당 프로젝트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투자 여부 및 규모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 <침묵>은 외적 조건으로 봤을 때 흥행 실패 가능성이 낮은 기획이었습니다. 중견 감독 정지우와 스타 배우 최민식이 <해피엔드>(2000) 이후 17년 만에 만났습니다. 또한, 창작 시나리오가 아니라 어느 정도 검증된 원작 – 중국 영화 <침묵의 목격자> – 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작사 용필름 역시 <아가씨>, <럭키> 등 여러 외국 작품들을 리메이크하여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낸 회사였죠. 그러나 개봉 첫 주말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제작비 회수가 어렵게 됐습니다.

현실 정치에 일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재벌 그룹 회장인 임태산(최민식)은 유명 가수 유나(이하늬)와 공개 연애 중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유나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평소 유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임태산의 외동딸 미라(이수경)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됩니다.

공교롭게도 임태산을 비리 혐의로 여러 번 잡아넣으려 했던 검사 동성식(박해준)이 이 사건을 맡게 되고, 미라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한 임태산은 미라의 과외 선생이기도 했던 변호사 최희정(박신혜)를 수소문해 미라의 변호를 맡깁니다.

아쉬운 각색, 독이 됐다

여러모로 구색을 잘 갖춘 이 영화가 흥행에 쓴잔을 마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각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태산의 ‘사랑’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구성이 여러모로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 사건은 임태산 정도 되는 재벌 회장에게 큰일이 아닙니다. 그저 변호사의 제안대로 딸의 과실치사로 유죄 인정 후 심신미약을 감경 사유로 제시하고, 피해자 측과 합의해서 집행 유예로 나오게 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굳이 딸의 앞길을 걱정하면서 꼭 무죄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죠.

그래서 임태산이 굳이 딸의 무죄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원한다는 식으로 말할 때, 그의 심정에 공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자꾸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큰 사업 기회나 다른 권력을 획득할 가능성 같은 게 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여기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임태산의 ’부정(父情)’ 혹은 유나에 대한 진정한 사랑만 끝까지줄기차게 부각될 뿐입니다.

원작 영화 <침묵의 목격자>에서 재벌 회장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와는 반대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재판 과정이 진행되면서 그의 본심이 점차 드러나는 식의 구성을 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말 부분에 가서 모든 것이 밝혀지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야기 진행 과정에서 걸리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원작보다 임태산이란 인물에 더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구성이 바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에 맞게 내용도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질 않다 보니 이야기가 원활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법정물의 재미를 잘 살려내지도 못했습니다. 일반적인 법정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치열한 법리 대결이나, 실제 삶과 법률 조문이 딱 들어맞지 않는 틈을 이용한 반전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영상 증거 확보 여부에 너무 골몰합니다. 정작 사건 해결의 핵심으로 설정된 영상물은 화면 속 당사자와 관련 없는 제삼자가 촬영한 것이라서 우리나라 법리로는 증거 능력이 부족할 수 있는데도 말이죠. 또한, 피해자에 몸에 남은 법의학적 증거가 영상물과 일치하는지 여부 등도 전혀 검증되지 않습니다.

인물을 다루는 방식도 아쉽습니다. 임태산을 비롯하여 주요 인물인 검사와 변호사 누구에게도 감정 이입이 어렵습니다. 관객은 인물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제삼자 입장에서 관찰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임태산은 종잡을 수가 없고 동성식과 최희정은 평면적이고 상투적인 등장인물이 돼 버렸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밀착해서 사건을 풀어갔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제작진이 ‘이런 상황에 부닥친 전형적인 인물이라면 관객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 가능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속 ‘그’의 사랑

흔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권위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자기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삶의 모든 사안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표출하면서 직장이든 가정에서 자기 뜻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려 합니다. 이런 태도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반감을 갖게 합니다.

이 영화 <침묵>의 임태산은 그런 권위적인 아버지의 전형입니다. 영화 내내 그는 딸과 약혼녀 모두를 ‘사랑’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과연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는 상대를 자기 방식대로 사랑한 인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딸 미라도, 약혼녀 유나도 그가 사랑을 쏟아붓는 ‘대상’이지, 동등한 입장에서 그와 사랑을 주고받는 ‘주체’로 그려지지 않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임태산이 겪는 혼란과 비극은 자초한 일이 됩니다. 실제로 애초부터 딸과 약혼녀가 대립하게 만든 계기를 만든 것은 그였습니다. 딸을 위해 준비한 마지막 반전 역시 당사자는 원하지도 않는데 혼자서 너무 많이 앞서간 무리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의 아낌없는 사랑이 딸의 행복이라는 결실을 볼 수 있을까요? 답은 회의적입니다. 혼자 남은 딸이 평생 지고 갈 죄책감과 미안함의 깊이는 어느 때보다 클 테니까요. 권위적인 아버지는 이렇게 자기 위안과 만족이라는 틀 안에서 홀로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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