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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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주)플러스엠

2017. 11. 2. 개봉

이야기를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감동을 선사하는 내러티브 예술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소설이나 연극, 영화부터 웹툰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특유의 방식으로 재미와 감동을 줍니다. 그러나 매체별로 수용자와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판이해서, 한 매체에서 성공적이었어도 다른 매체로 옮겼을 때 똑같이 좋은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영화 <부라더>는 소극장 뮤지컬로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기본 설정을 가져온 작품입니다. 원작 뮤지컬의 대본과 연출을 맡았던 연출가 장유정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았습니다. <김종욱 찾기>, <그날들> 같은 히트 뮤지컬을 다수 연출한 한국 창작 뮤지컬 계의 유명 연출가죠. 이미 자기 작품을 영화화한 <김종욱 찾기>(2010)로 감독 신고식을 치른 바 있습니다.

돈이 될 만한 문화재 발굴이 취미인 학원 역사 강사 석봉(마동석)과 서울과 안동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을 맡은 회사의 팀장인 주봉(이동휘)은 안동의 종갓집 형제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른 친척들과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살던 형제는 아버지의 부고를 받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서로에 대한 반감 때문에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며, 특히 전통 의례를 고수하는 종갓집 문화에 대해 아주 질색을 합니다. 한편, 고향 집으로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묘령의 여인 오로라(이하늬)는 그들 주위를 맴돌며 크고 작은 파문을 일으킵니다.

뮤지컬을 영화로 바꾸는 작업

원작 뮤지컬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제간의 불화를 축으로, 낡은 형식에 얽매인 유교 문화를 비판하면서 가족의 가치를 되새기는 내용을 뼈대로 합니다. 영화는 원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노래를 뺀 대신, 인물 설정을 덧붙이고 다양하게 새로 쓴 장면들을 첨가하여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에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마동석-이동휘-이하늬는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앙상블을 보여줍니다. 조연으로 나오는 조우진-송상은 커플도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딱히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노래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원작의 뮤지컬 넘버들은 상황 설정만 있는 앙상한 이야기를 내용 면에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꽉 채워줬던 데 반해, 영화를 위해 새로 들어간 부분들은 그만한 역할을 못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 나름대로는 복선과 서브플롯을 깔아 놓고, 슬랩스틱 코미디로 버무린 다양한 상황극을 시도하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시종일관 관객을 제삼자 입장의 관찰자로 만들어 버려서 감흥이 떨어집니다.

만약 이 영화 속 상황극을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무대 공연이나 <개그 콘서트> 같은 공개 코미디 형식을 통해서 했다면 달랐을 것입니다. 관객의 역동적인 반응과 시너지를 일으켜 평균 이상의 재미를 주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스크린이 배우의 연기와 관객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기 때문에, 좀 더 배역에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주요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야기의 초점이 불분명한 각본 역시 아쉬운 부분입니다. 중심인물의 목표-갈등 상황-해결 방법으로 이어지는 플롯이 불분명하고,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메시지와 연관성 있게 조직화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를 아버지의 장례 치르는 기간 동안 사이 나쁜 형제가 겪는 소동극이라고밖에 요약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00분 정도의 길지 않은 상영 시간 동안 시계를 자주 보게 됩니다.

가족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가부장제의 폐해는 비단 형식만 남은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권위적인 가부장은 세계 어디에나 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는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을 테니까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만, 자식의 생각이나 감정보다 자신의 욕망과 의무를 앞세우는 부모는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 자식 관계가 틀어지게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폭력의 씨앗은 늘 상대방보다 자신의 욕망과 이념을 앞세우고자 할 때 뿌려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가 제시하는 해법은 갈등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봉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석봉-주봉 형제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 것은 물론 진심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를 앞세우느라 자식들의 감정과 생각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 행동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일종의 폭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은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낳고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 준 부모의 노고를 절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부모 세대의 잘못까지 무조건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결말처럼 잘못에 대한 부모 세대의 인식과 반성 없이, 그저 자식들이 부모의 진심을 뒤늦게 알게 돼서 미안했다는 식으로 문제를 덮고 넘어가면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 석봉과 주봉 형제가 자식을 키우게 되었을 때 ‘다 너희를 생각해서 그랬다’란 변명을 입에 올리는 모습, 눈에 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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