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 압둘 Victoria and Abdul (2017)

resize_V&A_P
©UPI 코리아

2017. 10. 25. 개봉

매년 연말이 되면 북미 시장에는 아카데미 후보작을 노리는 영화들이 하나둘씩 등장합니다. 12월 말까지 북미에서 개봉한 영화가 다음 해 초에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제 후보 자격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들은 보통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유명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나,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감동 실화를 소재로 합니다.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장하는,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감독이나 배우를 기용하지요.

이 영화 <빅토리아&압둘>도 그런 기획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인도 청년 압둘 카림(알리 파잘)은 영국 총독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영국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인도에서 만든 금화를 바칠 시종으로 뽑힌 거죠.

원래 영국에 잠깐 체류하면서 금화만 바치고 인도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빅토리아 여왕(주디 덴치)은 압둘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두 사람은 곧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가 되고, 여왕은 압둘에게 ‘문쉬(영적 스승)’라는 칭호를 선사합니다.

생애 두 번째 빅토리아 여왕 역할

주디 덴치가 빅토리아 여왕 역할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97년에 나온 <미세스 브라운>에서 남편 앨버트 공이 죽은 후 실의에 빠졌던 시절의 빅토리아 여왕을 연기한 적이 있습니다. 시종 존 브라운과 교감을 나누며 삶의 의지를 되찾았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었죠.

<빅토리아 & 압둘>은 <미세스 브라운>과 연결지을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시기적으로 존 브라운이 세상을 떠난 지 몇 년 안 된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여왕이 시종과 교감을 나누고 삶의 기쁨을 찾는다는 설정도 비슷하죠. 주디 덴치의 빅토리아 여왕 연기도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영화는 좀 다른 길을 갑니다. 여기에는 존 브라운과 압둘 카림이 완전히 정반대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이 차이점으로 작용합니다. 존 브라운은 다소 무례한 태도로 여왕을 대하면서, 여왕이 갇혀 있던 틀을 깰 기회를 제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압둘 카림은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사려 깊은 영적 스승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미세스 브라운>에서는 존 브라운을, <빅토리아 & 압둘>에서는 빅토리아 여왕을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인물이 상황을 주도하기 마련이니까요. 압둘은 자신의 속내를 헤아려 주지 못하는 답답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던 빅토리아 여왕의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인 ‘문쉬’의 여러 가지 단점을 감싸고 신뢰하는 모습은 역사상의 다른 나쁜 사례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러시아의 라스푸틴이나 고려 말의 신돈, 그리고 가깝게는 최순실 생각도 납니다. 압둘은 그들처럼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권력자의 마음을 산 방식과 거의 유사하게 여왕을 사로잡습니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주디 덴치의 연기입니다. 그녀는 실제 자기 나이와 비슷한 또래의 여왕을 연기하면서, 마치 자기 이야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감정을 토로합니다. 특히 화면에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 여왕의 인간적인 고뇌와 외로움을 잘 표현하지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그녀의 얼굴은, 범상치 않은 연륜을 가진 여왕이자 여배우의 얼굴로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아카데미 수상을 노리는 영화답게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를 비롯하여 각 부문에 베테랑 스태프들을 기용하였습니다. 특히 스티븐 프리어즈는 최근에 나이 지긋한 여성 주인공에게 관객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 왔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에는 더욱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더 퀸>(2006)의 헬렌 미렌에게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겼을 뿐 아니라, <필로미나의 기적>(2013)의 주디 덴치, <플로렌스>(2016)의 메릴 스트립에게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 지명을 안긴 것 등 최근 실적이 화려합니다.

신분을 뛰어 넘은 인간적 교감 보여 주지만

본래 나약한 개체인 인간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정서적 안정감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노년의 빅토리아 여왕도 그랬습니다. 명목상 대영제국과 인도 제국의 왕이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도인이라 천대받는 압둘을 끝까지 존중하고 지키려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빅토리아 여왕과 압둘 카림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식민 지배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지 않았더라면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을 관계인데, 이것을 휴머니즘으로 포장한 것이 아무래도 껄끄럽습니다.

만약, 일본 왕이 우리나라나 동남아시아 출신 하인과 훈훈한 인간적 교류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발굴하여 영화를 만든다면,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일왕 같은 전범은 아니었지만, 제국주의 국가의 수장이었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극 중에서 빅토리아는 압둘을 보호하고 인간으로 대우하려 애썼지만, 그 순간에도 식민지 인도인들은 여전히 영국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었습니다. 최고 지도자의 호의는 개인적인 것이었을 뿐 애초부터 지배 종속 관계가 상존하는 현실을 넘어설 생각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인간적인 교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겠지만, 이 영화의 의의는 그저 이 특별한 만남을 발굴했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w

%s에 연결하는 중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