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君の膵臓を食べた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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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25. 개봉

인기 원작 소설을 대중 영화로 만드는 경우,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화차>(2012)처럼 원작의 주제를 유지하면서 영화적으로 재해석하여 독립적인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최근 개봉한 <남한산성>처럼 최대한 원작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원작의 영상화된 버전을 만드는 것이죠.

첫 번째 방식은 검증된 원작의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위험 부담은 있지만, 영화적으로 괜찮은 작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의사 소통 방식이 완전히 다른 매체인 소설의 영향권 안에 있기 때문에 작품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원작에 좋아했던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서른 살의 시가(오구리 슌)는 모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도서 위원으로 활약한 인연 때문에 곧 철거될 도서관 자료 정리를 총괄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도서관에 얽힌 학창 시절의 추억이 있습니다.

추억의 주인공은 같은 반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입니다. 당시 혼자서 책만 보며 지내는 외톨이였던 시가(키타무라 타쿠미)는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사쿠라의 ‘공병문고’라는 비밀 노트를 보게 됩니다. 그 안에는 그녀가 췌장에 병을 얻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 써 내려간 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였던 사쿠라는 시가가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합니다. 오히려 시가가 자신의 비밀을 지키는지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도서 위원으로 자원해 시간을 같이 보냅니다. 시가는 사쿠라가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할 뿐이지만, 사쿠라는 그런 시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어가는 자신의 소원을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원작 소설과 다른 점

영화판이 원작 소설과 다른 점은 12년 후 어른이 된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 감독에 따르면 사쿠라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에겐 계속 살아가야 할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바뀐 설정이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에 있어 효과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새로 들어간 설정들을 보여 주느라, 이야기 초반에 시가와 사쿠라의 특이한 상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작을 읽은 사람이거나 로맨스물의 뻔한 공식에 관대한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 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관객들은 어색하고 작위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원작 소설 속의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영상으로 잘 재현했다는 데 있습니다. 두 사람이 특급 호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에피소드나, 시가가 사쿠라에게 마지막으로 문자 보내는 장면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작 소설이나 만화를 먼저 본 관객이라면 거기서 느꼈던 설렘과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쿠라 역할을 맡은 하마베 미나미는 기자 간담회에서 미소짓는 연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얘기했는데, 영화를 보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소녀라는 부자연스러운 설정도 그렇지만, 몇 가지 다른 느낌의 미소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연기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테니까요. 하마베 미나미는 그런 부담을 잘 이겨내고 소설 속 사쿠라라는 인물을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각각 고등학생과 성인 시절의 시가 역할을 맡은 키타무라 타쿠미와 오구리 슌도 섬세한 감정 표현을 통해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 줍니다. 늘 혼자 지내는 게 편했던 남자가 우연히 친해지게 된 소녀와의 관계를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잘 그려냅니다.

다매체 전략에 최적화, 원작의 핵심 지켰다

일본에서 ‘미디어 믹스’라고 부르는, 대중문화 산업의 다매체 전략 차원에서 보면 영화는 부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여러 매체 중 하나일 뿐입니다. 독자적인 완성도를 추구하기보다는 인기 TV 드라마 시리즈나 만화, 소설 등의 원작을 될 수 있는 대로 거스르지 않으면서 또 다른 ‘버전’을 만드는 것이 이 전략에는 더 맞습니다. 원작 소설의 독자가 영화판이 궁금해서 극장을 찾게 하고,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이 뒤늦게 소설을 찾아 읽게 만들면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자기 역할은 충분히 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던 소년이 뜻하지 않게 자기와 정반대인 소녀를 만나 친해지게 되면서 삶의 기쁨을 깨닫게 되는 원작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영화화하면서 약간 손발이 오글거리는 설정이 꽤 추가되긴 했지만, 모두 원작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원작을 본 관객이라면 애교로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사춘기 청소년이든, 일상에 매몰되어 바쁜 하루를 보내는 성인이든 누구에게나 그렇습니다. 고립된 개인의 능력이나 힘으로는 인생살이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없고, 삶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수도 없으니까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고백은 그런 깨달음을 알려 준, 소중한 이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언뜻 들으면 엉뚱하고 엽기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이 말에 담긴 고마움과 사랑은 곱씹을수록 진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 점이 바로 소설과 만화에 이어 영화까지 히트하며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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