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Brad’s Status (2017)

BrS_P
©영화사 진진

2017. 9. 21. 개봉

4, 50대는 어떤 분야에서든 사회의 중추로 자리를 잡는 시기입니다. 철 모르던 20대 시절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 어엿하게 성장하여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뿌듯해지지요.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기의 현재 모습을 잘 나가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왠지 모를 패배감을 곱씹기도 합니다. ‘예전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 텐데’ 하고 후회하면서요.

이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주인공 브래드 슬로운(벤 스틸러)이 딱 그렇습니다. 올해 47세로 미국 서부 세크라멘토에서 사는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럼스)와 함께 미국 동부 보스턴 인근 대학교 투어를 위해 떠날 예정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는 밤에 잠을 잘 못 잡니다. SNS를 통해 대학 시절 친구들이 다 자기보다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기부 모금을 하는 시민 단체에 일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오기가 생긴 그는 아들과 타고 가는 비행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으로 무작정 업그레이드하려는 객기를 부립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터넷 할인 티켓이라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맙니다.

하지만, 아들 앞에서 완전히 스타일을 구긴 브래드에게도 한 줄기 희망이 생깁니다. 아들의 1지망 대학이 하버드대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죠. 자식 농사라도 잘 지으면 남들한테 내세울 게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브래드는 이 때부터 아들의 하버드 진학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상황 설정이나 내용 전개는 매우 현실적인 드라마 톤이지만, 끊임없이 웃음 폭탄을 터뜨리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영화 내내 자격지심 가득한 행동을 하고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브래드는 관객의 냉소와 쓴웃음을 한몸에 받게 됩니다. 물론, 브래드를 무조건 속물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도 가끔은 영화 일을 하지 않았으면 경제적으로 훨씬 윤택하게 살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할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브래드는 너무 도가 지나칩니다.

이렇게 브래드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높아지는 긴장감은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확실히 높여 줍니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를 미국 보스턴에 떨어뜨려 놓았을 때 괜히 나라 망신이나 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희극은 ‘평균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모방으로서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벤 스틸러는 혼자 진지하고 혼자 고민을 거듭하는, 덜 자란 20대 청년 같은 브래드를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웃음기 하나 없이 모든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그의 모습에서 웃음의 크기는 더욱더 커집니다. 자기는 심각한데 보는 사람은 무지 웃긴 브래드의 상태를 표현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는 연기였습니다.

아들 트로이 역할로 나온 신예 오스틴 에이브럼스의 연기도 좋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불안과 기대, 아버지에 대한 창피함과 고마움 등이 뒤섞여 복잡했을 트로이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합니다. 기성세대가 흔히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라고 하는, 이 시기 청소년의 전형적인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었습니다.

마이크 화이트는 <도슨의 청춘일기>(1998)의 초기 에피소드들과 <척 앤 벅>(2000), <스쿨 오브 락>(2003), <나초 리브레>(2006) 같은 수작 코미디 영화의 각본을 맡은 바 있습니다. 그간 미성숙한 남성의 자격지심이나 치기 어린 도전을 다루곤 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비슷한 캐릭터를 내세워 남자의 삶에 대한 고찰을 이어갑니다.

40대 아저씨가 된 X세대의 초상

극 중 브래드는 미국의 세대 구분으로 볼 때 베이비붐 세대 바로 다음인 X세대 (Generation X, 1961~1980년 출생)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이전 세대와 다른 자기들만의 문화적 영역을 구축하는 등 독립적인 면을 자주 보여 주었지만, 성인이 된 후 심각한 경기 침체 등을 겪으면서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된 세대지요. 우리나라의 X세대, 즉 90년대 초중반에 대학에 들어간 세대와도 아주 비슷합니다.

벤 스틸러나 마이크 화이트는 작품 활동 내내 X세대로서 정체성을 드러낸 인물들로서, 나이 먹은 X세대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데 최적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벤 스틸러가 한창때 감독하고 출연한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1994)는 이 영화와 좋은 비교 대상이 됩니다. 당시 갓 사회에 진출해 성장통을 겪었던 X세대 청춘은 이렇게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는 40줄에 이른 X세대 남성의 사회 경제적 상황과 심리적 박탈감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쪽을 택합니다. 세상에는 여전히 세속적인 지위나 명예, 재력보다 소중한 것이 있으며, 브래드를 비롯한 X세대 백인 남성들 역시 베이비붐 세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혜택을 누려 온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죠.

일반적인 성장물처럼 주인공 브래드에게 일말의 깨달음이나 자기만족의 순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점은 특이한 부분입니다. 이만하면 좀 알아들으라고 얘기해 주고 싶을 정도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브래드는 미몽에서 빠져나올락 말락 한 상태에 머무릅니다. 하지만 브래드의 주변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일, 가족 간에 감사와 사랑을 보내는 일, 의미 있는 일에 일생을 투자하는 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요.

역시 40대가 된 X세대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노아 바움백 감독의 <위 아 영>(2014)이 — 공교롭게도 이 작품 역시 벤 스틸러가 주인공입니다 — 알량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는 식으로 자기 위안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쉽게 면죄부를 주지 않는 이 영화의 태도가 훨씬 건강해 보입니다. 더욱 철저하게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야 진정한 깨달음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뭔가 자꾸만 남들보다 부족하고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재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이런 식의 자격지심은 자기가 지금까지 일구어 온 삶에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취를 안 알아줄지도 모르겠다 싶을 때 생기니까요. 이 영화 속의 브래드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남의 시선에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인간적 교류를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중년의 정체성 위기를 넘어서는 해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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