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 리버 Wind Riv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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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픽쳐스

2017. 9. 14. 개봉

미국 원주민은 미국 역사에서 언제나 국외자였습니다. 이민자들의 영토 개척 과정에서 참혹하게 학살당했고, 남은 사람들은 보호 구역 안에 머물며 박제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만성적인 실업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원주민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이 술과 마약에 빠져 지내거나 자살의 유혹에 굴복하고 있습니다. 보호 구역을 나와 미국 사회에 정식으로 편입되더라도 높은 생활비와 인종 차별의 희생양이 되기에 십상이니까요.

이 영화 <윈드 리버>는 인디언 보호 구역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에서 출발합니다. 와이오밍주의 야생동물보호국 직원으로 맹수 사냥 전문가인 코리(제레미 레너)는 인디언 보호 구역 ‘윈드 리버’ 내에 퓨마가 출몰한다는 신고를 받습니다. 신중하게 퓨마의 발자취를 좇던 코리는 뜻하지 않게 눈밭에서 동사한 인디언 여성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사건 담당자로 온 FBI 신참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은 주위의 의구심 어린 시선을 극복하고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녀는 이 지역 토박이이자 인디언 여성과 결혼한 전력이 있는 코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게다가 피해자는 코리도 아는 사람입니다. 3년 전에 살해된 채로 발견된 자기 딸과 절친했던 나탈리였으니까요.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는 미스터리

누군가가 죽고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플롯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지만, 단순히 사건의 해결만을 추구하지는 않은 것이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드넓은 산악 지대이자 인구 밀도가 낮아 담당 경찰이 6명에 불과한 이 지역에서 범죄 수사는 꽤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복잡하지는 않기 때문에 용의자의 수가 한정돼 있고, 따라서 사건 해결 자체는 비교적 복잡하지 않습니다.

간명한 미스터리 해결 과정 사이사이에는 피해자의 가족과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원주민 사회에 내려앉은 오래된 절망감, 사회의 소수자이자 수사관으로서는 더 소수자인 여성의 분투 등을 충분히 숙고할 시간이 주어집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감독 테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가로서 지명도를 높인 인물입니다. 두 작품 모두 범죄물로서 쾌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미국 사회의 소수자인 여성이나 저개발 지역 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효과적으로 그려내어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이번 작품에서는 두 전작의 핵심 내용을 뽑아 종합을 시도합니다. <시카리오>에서는 조직의 의도에 대항하여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여성 수사관의 노력을, <로스트 인 더스트>에서는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 사람들의 황폐한 내면을 가져옵니다. 미국 사회의 이 두 소수자는 서로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연대에 나서게 됩니다.

주인공 코리는 경계인으로서 일종의 샤먼과도 같습니다. 야생동물과 인간, 백인과 인디언, 수사관과 피해자 가족,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상반된 양쪽 세계의 충돌을 해결하고 균형을 회복시키는 인물이니까요. 제레미 레너의 무심한 듯 섬세한 연기는 관객이 코리의 내면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다리가 되어 줍니다.

제인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 역시 뛰어납니다. 신참이고 국외자이지만 권한은 가장 많은 FBI 수사관으로서, 불안한 마음과 무시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동시에 표현하는 장면들이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그녀의 분투는 더욱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매체 특성에 맞는 뛰어난 연출,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맞춰 모든 요소를 긴밀하게 짜 맞출 때 최고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야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언뜻 간단해 보이는 샷이나 편집 기술, 공간 설정에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중심 주제와 크게 관련 없는 이야기까지 욱여넣으려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장면을 찍고 이어붙이다 보면 산만하고 지루한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바로 이 점이 영화 만드는 일이 TV 드라마 제작이나 소설 집필 등 인접한 창작 영역과 다른 부분입니다. 총 상영시간이 영화보다 훨씬 긴 드라마나, 독자마다 읽는 데 들이는 시간이 천차만별인 소설과는 다르게 한정된 시공간에서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의사소통을 기획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윈드 리버>는 그런 면에서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소수자들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함으로써 고단한 삶의 자리를 지켜나간다는 것입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표현 요소들은 이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하기 위해 긴밀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장면 하나, 설정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국내에 개봉되는 과정에서 좀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14일에 개봉한 <윈드 리버>는 감독과 제작자의 의도가 온전히 반영된 버전이 아니었던 겁니다. 111분가량의 인터내셔널 개봉 판에서 범인들의 성폭행 관련 장면 40초가 삭제됐습니다.

수입사 유로픽쳐스는 묘사가 과도하다는 수입사 대표의 판단 하에 제작자와 감독의 양해를 얻어 삭제했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9월 21일에는 감독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107분짜리 칸 영화제 출품 및 북미 개봉판을 CGV 단독 상영으로 재개봉했습니다. (관련 기사: [역주행 신화 ‘윈드리버’, 감독판 함께 선보이는 사연 – 스타뉴스](http://m.star.mt.co.kr/view.html?gnb=news&snb=search&no=2017092114535092410#imadnews))

물론 감독판에는 처음 한국 개봉 시 삭제되었던 장면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삭제 장면이 배급사의 해명과는 다르게 노출이나 폭력의 수위가 전혀 높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남자 친구가 피해자의 탈출을 돕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어서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 때, 애초부터 수입사가 미국에서는 R등급 — 우리나라로 치면 청소년 관람 불가 — 이었던 영화를 국내 심의에서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낮출 요량이었던 게 아니었는지 의심이 갑니다. 문제의 장면이 그대로 들어간 재개봉 판의 등급은 청소년 관람 불가였으니까요. 앞으로는 어떤 이유에서든 변형된 작품이 개봉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윈드 리버>처럼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라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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