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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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2017. 9. 14. 개봉

멋진 차에 센스 있는 여자친구를 태우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드라이브하는 남성의 모습은 현대 대중문화에서 수만 번도 넘게 반복된 이미지입니다. 이 닳고 닳은 장면이 아직도 애용되는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남성 대중의 소박한 로망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차로 사회 경제적 지위를 과시할 수 있고, 자기의 가치를 알아주는 여성이 손 닿는 데 있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맘껏 들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충분한 호사입니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런 판타지를 제대로 자극하는 영화입니다. 애틀랜타에 사는 청년 베이비(앤설 엘고트)는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절도범들의 도주를 돕는 전문 드라이버입니다. 외모만 보면 딱히 범죄자 같은 분위기는 풍기지 않습니다. 늘 이어폰을 꽂고 다니기 때문에 그저 음악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 같지요. 하지만, 실전에 들어가면 어떤 돌발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는 담력과 탁월한 운전 실력이 있습니다.

그는 늘 음악을 들으며 모든 것을 합니다. 작전을 수행할 때도, 커피를 사러 갈 때도, 집에서 양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할 때도 그렇습니다. 또래의 매력적인 웨이트리스 데보라(릴리 제임스)와 통한 지점도 둘 다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죠. 그는 절도 프로젝트 기획자 닥터(케빈 스페이시)와 약속한 횟수를 다 채우고 깨끗이 손을 턴 다음, 데보라와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것을 꿈꿉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입니다.

대중적인 범죄 액션 판타지

이 영화의 기본 콘셉트는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았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와 유사합니다. 주인공의 직업이 똑같고 좋아하는 여성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범죄 세계의 현실을 비정하고 참혹하게 그린 <드라이브>가 더 취향에 맞을 수도 있습니다. 주인공의 운전 실력이나, 진짜 범죄자들의 섬뜩하고 위험한 느낌을 더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니까요.

그에 비하면 <베이비 드라이버>는 좀 더 대중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대나 20대 남성 관객들의 백일몽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것 같지요. 장르적 완결성이 높은 시나리오와 흥미진진한 자동차 액션, 그리고 언제 어디서 틀어도 인정받을 만한 음악이 어우러져 딱히 나무랄 데 없는 만듦새가 돋보입니다.

영국 출신 감독 에드가 라이트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뜨거운 녀석들> 같은 영화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직접 쓴 각본은 닳고 닳은 장르적 이야기 구조 속에 독특한 캐릭터를 집어넣은 다음, 그가 점차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치도록 몰아붙입니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독특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자동차 액션과 음악은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입니다. 베이비의 놀라운 운전 실력과 기지를 보여 주기 위한 도주 장면들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기발한 액션 장면들이 많이 나오고,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타게 되는 흥겨운 배경 음악 때문에 더욱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평범한 액션물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영화에 특별한 매력을 부여합니다. 먼저 뮤지컬 영화처럼 영화의 모든 요소를음악에 맞춘 장면들이 눈길을 끕니다. 베이비의 춤에 가까운 몸짓, 카메라 움직임, 편집 등을 전문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 세심하게 매만진 효과가 잘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은 이야기 진행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베이비와 데보라를 만나게 하는 매개체가 될 뿐만 아니라, 베이비와 다른 범죄자들 사이의 갈등의 씨앗을 뿌리기도 하니까요. 멋지고 듣기 좋은 음악들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OST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컴필레이션 음반입니다.

베이비 역할을 맡은 안셀 엘고트는 실제 DJ이자 가수로도 활동하는 배우입니다. 작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DJ로 초청받은 적도 있습니다. 190cm가 넘는 거구이지만 해맑은 표정이 매력 포인트죠. 영화팬들에게는 <안녕, 헤이즐>에서 주인공 헤이즐과 사랑에 빠지는, 골육종으로 다리를 잃은 소년 어거스터스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습니다.

디즈니 실사판 <신데렐라>(2015)의 주인공이었던 릴리 제임스는 데보라의 매력을 아주 잘 살렸습니다. 사실 말도 잘 통하고 상대의 장점을 금세 알아봐 주며 예쁘기까지 한 데보라는 남자가 원하는 이상형에 가깝습니다. 릴리 제임스는 최대한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톤을 유지하면서, 극단적인 상황과 캐릭터가 속출하며 전체적으로 붕 떠 있는 이 영화에 유일하게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케빈 스페이시와 제이미 폭스, 존 햄 같은 유명 배우들이 조연급으로 등장하면서 발휘하는 만만치 않은 카리스마도 이 영화의 중요한 볼거리입니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이들 모두는 베이비와 치명적인 갈등을 빚으면서 이야기에 흥미진진함을 더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남자에게 성장과 변화란

우리가 아직 미숙할 때는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며 그 체제 안에서 인정받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는 않는지 따져 볼 여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기고 점점 시야가 넓어지면 달라집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다가 아니며, 다르게 살아가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요.

이 영화에서 베이비가 궁지에 몰리고, 족쇄를 벗을 기회를 얻게 된 계기 역시 사랑하는 이들 때문이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자신을 끝까지 돌봐 준 양아버지나, 자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데보라에 대한 책임감은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으로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새 출발은 쉽지 않은 법입니다.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란 누구에게나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요. 지금까지 맺은 인간관계와 그와 더불어 얽혀 있는 이해관계는 언제고 되살아나서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앞으로 달라질 삶의 풍경 한 조각을 마음속에 품고 묵묵히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 속의 베이비 역시 그랬습니다. 데보라와 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 하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삶의 변화란, 이렇듯 치열한 고민과 투쟁을 벌이는 가운데 어느 날 문득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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