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17. 9. 6.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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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이마무라 쇼헤이는 <나라야마 부시코>(1983)와 <우나기>(1997)로 두 차례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일본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입니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일본 문화 개방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1999년 이후가 되어서야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지만, 그의 작품은 대체로 한국 관객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낼 때가 많았습니다.

1951년 일본의 3대 메이저 영화사 중 하나인 쇼치쿠에 입사해서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그는 곧 닛카츠 영화사로 옮깁니다. 당시 닛카츠는 메이저 영화사들과 독점 계약한 유명 감독과 배우 대신 신인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었습니다. 닛카츠에서 조감독으로 몇 편의 작품에 더 참여한 이마무라 쇼헤이는, 1958년 한 해에만 <도둑맞은 욕정>을 비롯한 무려 세 편의 작품을 내놓으며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에 맞선 강한 삶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일본의 문화 전통에서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죽음과 삶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또한 삶과 같은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로 취급할 때가 많습니다. 언제나 ‘삶’에 방점을 두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의 정서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대중 예술 작품 중에서 죽음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결연히 맞서 싸우는 경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죽음은 순수한 탐구 대상이거나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죽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을 다룬 미스터리 장르가 발달한 것이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동물적 행위인 섹스를 물신화한 성적 콘텐츠의 범람, 잔혹한 폭력 묘사도 서슴지 않는 경향 등은 이런 일본인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들은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해 왔습니다. 그의 영화에도 죽음과 폭력, 섹스가 자주 등장하지만 그 자체를 감각적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최종 목표는 삶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또한 그는 영화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하는 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데뷔 시절부터 정교하게 잘 짜인 화면을 선보였는데, 점차 감독 경력을 쌓아가면서 파격적인 카메라 앵글과 실험적인 연출 기법을 덧붙여 나갔습니다. 현란한 표현 그 자체를 탐닉하는 쪽은 아니고,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주제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는 편입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9월 6일부터 24일까지 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1979)으로 재기에 성공한 후 내놓은 후기 걸작들을 비롯하여, 초기와 중기 작품 대부분을 망라한 총 17편의 작품을 상영합니다.

이 중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봐 두면 좋을 작품 4편을 뽑아 소개합니다. 여기에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대표작 세 편 <복수는 나의 것>,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를 더한 최소 7편의 영화 정도는 언제든 챙겨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작품 소개와 상영 장소 및 일정에 관한 안내는 서울아트시네마 홈페이지(http://www.cinematheque.seoul.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 <끝없는 욕망>(1958)

오사카 히네노역. 가슴에 별표를 단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듭니다. 이들의 목적은 전쟁 당시 대량의 모르핀을 숨겨 놓은 곳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지금 재개발을 앞둔 상가 지역이 돼 있습니다. 주인공들은 남들의 이목을 피하고자 빈 집 하나를 임대한 후 땅굴을 파서 ‘보물’을 꺼낼 계획을 세웁니다.

이 작품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데뷔하던 해에 만든 두 번째 장편으로서, 서스펜스와 블랙 유머가 공존하며 잔혹한 묘사도 서슴지 않는 감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비슷한 컨셉의 장르물과 비교 헀을 때 이야기의 재미, 샷의 구성과 편집, 음악 등 완성도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만듦새가 돋보입니다. 재물 그 자체에 눈이 어두워 무슨 짓이든 하는 주인공들과 평범한 삶의 행복을 바라는 젊은 커플을 대비시켜, 과연 무엇이 더 중요한지 관객에게 반문합니다.

[둘] <돼지와 군함>(1961)

미 해군이 주둔한 요코스카의 유흥가에서 살아가는 킨타(나가토 히로유키)는 지역 야쿠자 조직의 말단 조직원입니다. 조직이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활용하여 돼지를 키우는 사업을 시작하자, 킨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나중에 받을 보너스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여자친구 하루코(요시무라 지츠코)는 그런 킨타를 못마땅해 하며 다 관두고 더욱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를 바랍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범죄 조직에 몸담은 애송이 주인공의 이야기는 무척 흔한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배경을 미군 주둔지의 유흥가로 두면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습니다. 패전 후 미 군정에 의해 연명하게 된 구체제의 인물들이 여전히 일본의 실권을 쥐고 있고, 이들의 탐욕이 젊은 세대의 앞날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비판합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의 초기작 대부분에 출연한 나가토 히로유키와, 후에 공포물 <오니바바>(1964)로 명성을 얻게 되는 요시무라 지츠코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돋보입니다. 잊을 수 없는 엔딩 시퀀스와 미군 병사들에 끌려간 하루코의 호텔 방을 보여 주는 씬 등 영화 표현 기법상으로도 눈여겨볼 요소가 많은 작품입니다.

[셋] <일본 곤충기>(1963)

시골 벽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메(히다리 사치코)는 집안의 궁핍함 때문에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지주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기도 하고, 방직 공장에 다니기도 하며, 전후에는 도쿄로 나와 살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매춘업에 종사하게 된 도메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포주로서 사업적 역량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뒤이어 나온 <붉은 살의>(1964)나 <인류학 입문>(1966) 같이 강인한 여성의 생명력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남성-죽음-쾌락을 위한 섹스와 여성-삶-생존 수단으로서의 섹스 사이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삶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부각합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시간대는 광범위하지만, 생애의 단계별로 중요한 순간들을 압축해서 보여 주고 정지 화면 등을 활용한 과감한 화면 전환을 선보이기 때문에 집중력을 잃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주연을 맡은 히다리 사치코는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자연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넷] <검은 비>(1989)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있던 시즈마 부부와 조카 야스코는 원폭 투하로 인한 끔찍한 참상을 몸소 겪은 바 있습니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은 건졌지만, 탈출 과정에서 방사능 낙진을 맞은 그들은 언제 드러날지 모르는 원폭 피해 후유증을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시즈마 부부는 야스코가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하기를 바라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영화 초반 원자폭탄으로 인한 히로시마의 참상을 다룬 시퀀스는 그 끔찍함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눈에 띄는 특수 효과 없이 처참한 상황에 겪는 인간 군상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만으로 보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는 점에서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지만, 그 이면에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원폭 생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도 없는 일본 사회의 무기력과 대비되면서 반성을 촉구합니다. 결말 부분에서 많이 쇠약해진 야스코가 저수지에서 솟구치는 물고기의 모습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장면이 그토록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의 강한 의지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회 현실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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