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의 보디가드 The Hitman’s Bodyguar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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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앤씨미디어그룹

2017. 8. 30. 개봉

장르 영화를 잘 만들려면 장르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기존 작품과 다른 점을 만들어 내야 하는 모순적인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관객들은 해당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쾌감은 물론이고, 다른 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도 원합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공식대로 가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방식을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없습니다.

이 영화 <킬러의 보디가드> 역시 그런 고민이 잘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처음 티저 포스터를 봤을 때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휘트니 휴스턴과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90년대 히트작 <보디가드>(1992)를 패러디한 포스터였죠. 한눈에 두 주인공의 관계를 알아 볼 수 있고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남성 버디 액션 코미디라는 이 닳고 닳은 장르에서 뭔가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업계 최정상급 보디가드인 마이클 브라이스(라이언 레이놀즈)는 자신의 일 처리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원래 정예 작전 요원 여러 명과 최고급 승용차들을 동원한 럭셔리 경호가 특기였던 그는, 어느 날 의뢰인이 예상치 못하게 암살당하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이제는 눈에 잘 안 띄는 싼 차를 타고 혈혈단신 의뢰인을 보호해야 하지만, 실력만큼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습니다.

한편, 벨라루스의 독재자 두코비치(게리 올드만)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인 국제사법재판소는 감옥에 갇혀 있는 청부살인업자 다리우스 킨케이드(사무엘 L. 잭슨)를 증인으로 내세우려 합니다. 유력한 물증을 지닌 다리우스는 다른 감옥에서 복역 중인 아내 소니아(셀마 헤이엑)를 풀어 주는 조건으로 협력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호송 과정에서 그를 저지하려는 두코비치 패거리의 공격을 받고, 다리우스와 그의 담당 인터폴 요원 아멜리아 루셀(엘로디 영)만이 은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다리우스는 아무도 모르게 재판소가 있는 암스테르담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아멜리아는 전 남자친구이기도 한 마이클에게 경호 서비스를 요청합니다.

버디 액션 코미디의 재미 

흑-백 남성 조합의 할리우드 액션물은 에디 머피와 닉 놀테가 나온 <48시간>(1982)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심 사건을 해결하면서 인종적 차이, 그리고 경찰과 범죄자라는 입장의 차이가 빚어내는 갈등을 점차 팀워크로 승화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지요. 4편까지 나온 <리쎌 웨폰>(1987) 시리즈와 3편까지 나온 <러시아워>(1998) 시리즈 등은 이런 전형의 변주로서 매우 성공적인 사례였습니다.

<킬러의 보디가드> 역시 그런 공식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여러모로 80년대 홍콩 코믹 액션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과장된 인물 설정, 웃기는 대사와 슬랩 스틱 코미디의 조화, 총기 액션과 격투 액션이 적절히 배합된 것 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약간 철 지난 느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습니다. 우선, 각본이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전체 스토리는 단순하고 뻔하며 인물들의 관계 변화도 정해진 순서를 따르지만,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단계를 밟아 나가는 과정이 좋습니다. 마이클은 국제적인 임무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뢰인인 다리우스와 인간적 교감을 나누고, 자신의 내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무리없이 잘 엮은 것이 돋보입니다.

또한, 의외로 액션의 쾌감이 상당합니다. 물론 <존 윅> 시리즈처럼 고난도 액션을 볼거리로 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화면의 화각을 좁히고 빠른 템포로 편집함으로써 관객이 체감하는 액션의 긴박감과 속도를 높였기 때문에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암스테르담 추격 장면은 속도도 빠르고 길이도 충분해서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식당과 공구 상점에서 벌이는 액션 장면도 스테디캠을 잘 활용하여 현장감을 높였습니다.

두 주연 배우의 코미디 호흡 역시 생각 이상으로 좋습니다. 세심한 실력파지만 뒤끝 있는 보디가드를 맡은 라이언 레이놀즈, 본능에 충실한 마초 로맨티스트 킬러를 연기한 사무엘 L. 잭슨은 완전히 상반된 두 인물의 대결을 잘 그려냅니다. 자잘하게 투닥거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물론,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서로에게 쌓인 신뢰와 우정의 크기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나이’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지요.

액션 영화에서 여성을 다룰 때

액션 영화의 역사에서 여성의 역할은 언제나 제한적이었습니다. 간혹 강도 높은 액션을 선보이는 여성 주인공 영화가 있긴 했지만, 많은 경우 여성은 구원의 대상이거나 남자 주인공의 액세서리, 그것도 아니면 끔찍한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기 일쑤였지요.

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은 남성이 다 합니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은 뻔한 액션 코미디치고는 신선합니다. 두 남성 주인공에겐 각각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이 있습니다. 아내의 사면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 모험이건 탈옥이건 다 할 수 있는 다리우스가, 여자 친구였던 아멜리아와의 관계 회복을 마음 깊이 바라지만 도무지 방법을 모르는 마이클에게 직설적인 조언을 하며 개입하는 장면들은 큰 웃음을 줍니다. 액션 영화에서 웬 사랑 타령이냐는 불평도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성적 긴장감과 재결합에 대한 기대라도 없었다면 평범한 액션물에 그치고 말았을 거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근래 개봉한 몇몇 한국 영화들은 영화 속에서 여성을 묘사하는 태도 때문에 지적을 받았습니다. 감독이 뒤늦게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거듭 사과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렇게 여성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단순히 호감의 대상이나 범죄의 피해자로 다루는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영화들에 비하면, <킬러의 보디가드>는 데이트용 영화로 선택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괜찮은 영화입니다. 여성을 비하하거나 영혼 없는 인형으로 만들지도 않고, 더 나은 남녀 관계를 위해 남자가 노력해야 할 일까지 알려 주니까요. 어느 정도 알아들을 귀가 있는 남자라면, 이 영화를 보고 자기 여자친구나 아내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재검토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저 여자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신사적으로 대해 주라는 고전적 기사도 정신을 반복할 뿐이지만, 그 정도도 못 하는 남자들이 수두룩한 한국 현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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