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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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엔터테인먼트

2017. 5. 17. 개봉

개봉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한 <불한당>에 대한 첫인상은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조폭에게 접근한 수사 요원이라는 설정은 이런 부류의 갱스터 영화에서는 흔한 것입니다. 교도소에 잠입한 수사관과 교도소의 제왕이 친분을 쌓는다는 설정 면에서 유사한 다른 영화 <프리즌>이 먼저 개봉하여 흥행한 것도 불리한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개봉 직후 이 영화를 연출한 변성현 감독의 SNS 계정 내용을 캡처한 사진 파일이 돌면서,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 2위에 감독 이름이 오르내린 것도 사람들이 관람을 꺼리게 된 이유였죠.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부터 예매율이 빠르게 하락했고, 영화가 괜찮다는 입소문에도 불구하고 100만 명에 다소 못 미치는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습니다.

여름 시즌에는 아무리 평이 안 좋아도 한국 영화 개봉작이라면 100만 넘기는 게 식은 죽 먹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흥행 부진은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대중적 오락 영화로서 재미와 볼거리를 두루 갖춘, 요즘 보기 드문 한국 영화였으니까요.

마약 밀매 조직의 에이스인 재호(설경구)는 감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교도소 내부의 담배 유통권을 가지고 교도소를 장악한 그는 왕처럼 생활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돌한 신참 죄수 현수(임시완)가 그의 눈길을 끕니다. 키도 작고 호리호리하지만 타고난 싸움 실력과 깡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현수는 마침 교도소 내 권력 다툼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재호를 돕게 되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급격하게 친해집니다. 그러나 현수는 재호의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혈안이 된 경찰 천 팀장(전혜진)이 일부러 심어 놓은 작전 요원입니다.

장르 영화의 쾌감을 살리는 방법

한국 영화 중에서 장르를 표방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기본 설정이나 아이템이 좋을 뿐, 전체적인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장르 특유의 주제와 사건은 갖추고 있지만, 인물을 거기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 개연성이 떨어질 때가 많았지요.

특정한 스타일이나 플롯은 장르 영화가 갖추어야 하는 기본 조건일 뿐입니다. 일반 관객이 장르 영화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개성 넘치고 설득력 있는 등장인물이 장르 규칙이라는 숙명 안에서 어떤 외적 투쟁과 내면의 갈등을 경험하느냐’입니다. 이걸 보여 주지 않고 그저 장르의 외피를 답습하거나 극단적인 표현에 골몰하면 관객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 영화 <불한당>은 장르 영화의 쾌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한 점이 가상한 영화입니다.

먼저, 인물들의 진짜 목표와 욕망을 적절한 시점에 드러나게 하면서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는 구성이 좋습니다. 뭔가 정리됐다 싶으면 등장하는 잦은 플래시백들은 다른 영화에서처럼 구차한 설명을 늘어놓는 방식을 피하면서, 효과적으로 주요 인물들의 겉모습과 다른 속내를 정확하게 짚어 줍니다. 이로 인해 서스펜스는 증폭되고 ‘이다음엔 어떻게 될까?’ 하는 기대 역시 점점 높아집니다.

장면 설계도 잘 돼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게 느껴질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재호가 자신과 결탁했던 교도소 계장에게 배신당하는 장면을 건물 안쪽에서 창문을 통해 보여 준 것이나, 후반부의 인감도장 회수하러 가서 벌어지는 액션 시퀀스를 공간과 배우를 활용해 인상적으로 설계한 것 등이 그 예입니다.

다만 절정부로 치달을 때 재호가 하는 선택이 다소 작위적인 면은 있습니다. 이제까지 현명한 판단을 해 온 그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돌변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예정된 결말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겠지만, 설득력이 다소 약해 보였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호흡도 최근 몇 년간 본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축에 듭니다. 예전의 날렵한 얼굴선이 제법 살아난 설경구는 근래에 출연한 작품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습니다. 겉으로는 헐렁하게 보이고 속 편한 이웃집 형 같지만, 상황이 닥치면 무시무시한 도살자의 면모를 번득이는 재호라는 캐릭터를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연기합니다.

임시완 역시 <미생> 같은 드라마로 만들어진 기존의 자기 이미지를 완전히 일신하여 이제는 확실히 배우의 길에 들어섰음을 보여 줍니다. 작고 호리호리하지만 뛰어난 싸움꾼인 그는, 마치 허영만의 만화책 <비트>의 주인공 민을 연상시킵니다. 비록 영화판 <비트>(1997)에서는 정우성이 그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이 영화가 지금 다시 만들어진다면 아마 임시완이 캐스팅 1순위가 될 것입니다.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영화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여 준 전혜진의 연기도 돋보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집념 강한 경찰로서 극의 균형을 잘 맞추어 줍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나 <마스터>(2016) 같은 영화처럼 극 진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여성 조연이 나오는 영화가 많아지는 것도 여성 연기자들의 영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의 현재, 그리고 미래

상업적인 극영화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관객이 영화 속 세상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단히 재미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관객이 본전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소수의 잘 만든 작품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한국 영화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일반 관객은 이미 한국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을 ‘한국 영화치고는 재밌었다’, ‘한국 영화인데도 괜찮더라’ 하는 식으로 말합니다. 국산 영화를 할리우드 화제작과 같은 수준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런 평가에 대해 오기가 생겨서라도 더 나은 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한국 영화 제작자나 감독 중에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영화적 완성도에 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흥행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울 뿐입니다. 흥행이 안 되면 완성도가 부족했다는 걸 돌아보기에 앞서 다른 영화 외적인 원인을 갖다 붙이기 바쁩니다.

이런 안일한 태도로 영화를 만든다면 앞으로 점점 더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장 올해만 해도 여름 시즌 기대작이었던 <군함도>가 제작비 회수가 어려운 흥행 성적에 그쳤고, 상영 2주 차를 맞은 <브이아이피>가 예매율 5위(영진위 통합전산망 8/30 기준)로 떨어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물론 <군함도>는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관 문제가 불거졌고, <브이아이피>가 여성에 대한 묘사로 반감을 사는 일이 있었습니다만, 두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는 일반 관객에게 지적받을 정도로 재미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좀 더 잘 만들었더라면 논란이 지금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른 여름 흥행작 <청년경찰> 역시 여성과 중국 동포를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흐름과 두 주인공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웃음 덕분에 500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요.

이 영화 <불한당>은 한국 영화계의 ‘관행적인 무기력함’과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을지언정 어떻게든 상투적인 묘사를 피하면서 누아르 장르 본연의 쾌감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개봉 초기에 터진 악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흥행에는 고배를 마셨지만, 한국 영화계가 되찾아야 할 활력과 패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보여 준 예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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