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호지스 3부작 – 스티븐 킹

 

<미스터 메르세데스>(2015. 7. 17.)    <파인더스 키퍼스>(2016. 6. 27.)
<엔드 오브 왓치>(2017. 8. 4.)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펴냄

우리나라에서 책은 잘 팔리지만 평가절하당하는 작가들이 몇몇 있습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런 편이죠. 신작이 나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등극하지만, 스타일만 있고 내용이 없다는 둥 이전 작품의 동어 반복이라는 둥 비판도 많이 받습니다.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제대로 읽지도 않고 비판하는 사람 역시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미국 작가 스티븐 킹도 한국에서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야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작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업적인 오락 소설 쓰는 작가 정도로 폄하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비평의 대상도 잘 안 되지요. 스티븐 킹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한 권도 제대로 안 읽어 보고 편견을 가진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스티븐 킹의 ‘빌 호지스 3부작’은 주로 호러나 스릴러, 혹은 초자연적인 판타지에 강점을 보였던 그가 처음으로 탐정 미스터리에 도전한 작품입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2014)를 시작으로, <파인더스 키퍼스>(2015)와 <엔드 오브 왓치>(2016)까지 매년 한 권씩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한 해 늦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출간되었지요.

작가의 데뷔작이 1974년 작 <캐리>니까 무려 40년 만에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 셈입니다. 그런데도 시리즈의 첫 작품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전미추리작가협회(MWA)가 그해의 최고 미스터리 소설에 주는 에드가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탐정 미스터리는 범죄 사건이 발생하고, 사설탐정이나 형사가 그 사건을 조사한 끝에 범인을 잡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장르입니다. 독자는 탐정과 함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 가면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기존의 스티븐 킹 소설 중에도 초자연적이고 공포스런 현상의 근원이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플롯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범죄자를 뒤쫓는 탐정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킨 적은 없었습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2015년 국내 출간)
이 책에서는 시리즈 전체의 중심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대량 살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 일단의 실직자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지역의 시민회관에서 밤샘 줄서기를 합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갑자기 나타난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가 이들을 깔아 뭉갭니다. 훔친 벤츠 승용차로 사람들을 공격했기 때문에 세간에서는 이 사건의 범인을 ‘메르세데스 킬러’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담당 형사였던 빌 호지스는 이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정년 퇴임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온종일 TV 앞에만 앉아 있는 등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스마일 마크가 찍힌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살하게 만들 목적으로 메르세데스 킬러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빌은 강한 의지를 발휘하여 그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고 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인 형사 미스터리에서는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하는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스티븐 킹 소설답게 살인마의 이상 성격을 보다 깊숙이 고찰하고, IT 기술을 활용한 치밀한 범죄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는 등 범인의 비중도 만만치 않게 높습니다.

스티븐 킹 소설의 또 다른 특징인, 등장인물들이 진실한 인간적 교류를 나눌 때의 뭉클한 감동도 있습니다. 은퇴하고 외롭게 지내던 빌 호지스는 보석 같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다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아스퍼거 증후군 증세를 보이는 홀리 기브니와 똑똑한 흑인 소년 제롬 로빈슨은 시리즈 내내 그의 조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인더스 키퍼스>(2016년 국내 출간)
이 책에서는 은둔하고 있던 천재 작가 로스스타인이 살해당하고 돈과 미발표 육필 원고를 도둑맞은 사건이 등장합니다. 탐정 사무실 ‘파인더스 키퍼스’를 낸 빌 호지스와 홀리 기브니는 제롬의 여동생 친구의 오빠가 이 사건에 휘말리자 수사에 나섭니다.

이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 스티븐 킹의 기존 작품들과 가장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도시 전설(urban legend) 풍의 설정, 소설과 작가에 대한 집착이 부른 끔찍한 범죄, 가슴 아픈 유년기의 풍경, 긴장감 넘치는 전개 등이 그렇지요. 시리즈 중에서 스티븐 킹 소설의 애독자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사건이 그리 복잡하지 않고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도 간단한 편이어서,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그냥 ‘스릴러’에 불과하다고 밀쳐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엔드 오브 왓치>(2017년 국내 출간)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올해의 최신작으로서, 1편의 살인마 브래디 하츠필드와 빌 호지스의 마지막 대결을 다룹니다. 브래디는 검거 과정에서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어 반쯤 식물인간인 상태로 병원에 있었습니다. 2편에서 빌 호지스는 다른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그런 브래디를 감시라도 하듯 자주 상태를 확인하러 들른 적이 있지요.

이미 신체 기능을 상실한 브래디는 기이한 방식으로 정신 지배를 통해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빌 호지스는 몇몇 연쇄 자살 사건에서 브래디의 흔적을 감지하고 그에게 심증을 두지만, 그의 말을 믿어 주는 사람은 그의 파트너 홀리 뿐입니다.

시리즈 내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범인과 탐정 양쪽의 사정을 자세히 다루면서 거기서 나오는 서스펜스를 이야기의 주된 동력으로 삼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개입시키면서도 그것이 일어나는 원인을 명백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깔끔한 설명과 해결을 원하는 독자라면 좀 불만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범인을 뒤쫓는 과정은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개인적 곤경에 빠진 상태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빌 호지스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돕는 친구들의 관계는 언제나처럼 감동적입니다.

‘빌 호지스 3부작’이 흥미 본위의 오락 소설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드러난 미국 사회의 취약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이론가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가 자신의 저서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진단한 것처럼, 이따금 일어나는 미국의 대량 살인 범죄의 이면에는 미국식 금융 자본주의가 존재합니다.

실물이 아니라 숫자로 돌아가는 이 체제는 튼튼한 팔다리와 일할 능력이 아닌 통장 속의 숫자로 인간을 판단합니다. 국민의 대부분은 좋은 일자리가 모자라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잘것없는 일을 한다고 무시당할 뿐이지요. 이렇게 상처받은 자존감은 인간을 점점 고독하게 만들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반사회적인 방식으로 표출할 때 범죄자가 탄생합니다.

1, 3권의 악당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 하츠필드나, 2권의 소시오패스 독서광 모리스 벨라미 같은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직업에 종사하며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브래디나, 교수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견해 때문에 늘 문제를 일으키는 모리스는 본질상 똑같은 심리 상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은 외로운 현대인들의 불안과 욕망을 동물적으로 감지합니다. 자기들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죠. 이들의 먹잇감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약점을 잡고,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다가 마침내 완전히 파괴해 버립니다.

이런 두려운 상황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연대하는 것뿐이라고 스티븐 킹은 역설합니다. 이들에게 당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를 믿고 함께 있음에 감사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요. 과체중의 퇴물 취급받는 전직 형사와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에 평생을 구박데기로 살아온 여성,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선뜻 나선 흑인 소년의 활약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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