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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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NEW

2017. 8. 17. 개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지난 2013년에 개봉한 <숨바꼭질>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5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큰 성공을 거두어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가 높다거나 뛰어나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집 하나가 가장 큰 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인 한국 사람들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공포를 제대로 건드려 입소문을 탄 것이 주효했습니다.

이 영화 <장산범>은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이 두 번째로 내놓은 장편 영화입니다. 한때 인터넷에서 괴담으로 돌아다녔던 ‘장산범’을 소재로 삼아 나름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공포물로 만든 것입니다.

희연(염정아)은 치매 증세가 있는 시어머니(허진)를 직접 모시기로 하고 시어머니의 고향인 장산으로 이사합니다. 익숙한 공간으로 옮기면 조금이라도 병세에 차도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죠. 여기엔 수의사인 남편 민호(박혁권)와 어린 딸 준희가 함께 합니다.

그런데, 근처 뒷산에는 목소리를 흉내 내 사람을 꾀는 동굴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희연의 집에 들렀던 동네 아이들이 거기로 갔다가 공포스런 일을 겪게 되자, 아이들을 돕기 위해 동굴로 갔던 희연은 숲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신린아)를 만납니다. 이 때부터 희연과 희연의 가족은 이상한 일을 겪게 되지요.

‘장산범’이란 존재 자체는 공포 영화의 소재로 나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꾐에 빠지게 하고, 거울을 활용하여 습격하는 그의 수법은 써먹기에 따라서 충분히 공포와 스릴을 자아낼 수 있는 설정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마지막 30분간 이어지는 장면들은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관객이 제대로 된 서스펜스와 스릴을 맛보기 전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관객은 무서울 듯 말 듯 한 미적지근한 상태로 1시간 정도를 보내야 합니다. 감독도 뭔가 긴장감을 느끼게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그것이 딱히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공포물의 이야기 전략

공포물은 보통 시작할 때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미리 드러냅니다. 그래야 관객은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을 지닌 채 영화를 보게 됩니다. 제작진은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질 ‘대결’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이런 불안감을 차곡차곡 증폭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두려운 존재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밝혀 나가는 식의 미스터리 플롯이 덧붙여지기도 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어떤 특징을 지닌 존재인지 처음부터 아주 명확하게 보여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튀어나올 만한 조건이 어떤 것이며 주된 수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짚어 줘야,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그 비슷한 상황이 됐을 때 불안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처음부터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아예 노출하지 않고 그의 정체를 차츰 밝혀 나가는 구성도 가능합니다. 주인공을 둘러싸고 뭔지 모를 괴상하고 공포스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도대체 이런 일들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지 차근차근 알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포의 근원이 무엇이며 왜 주인공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인지가 명확히 드러나고, 주인공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나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 같은 영화들이 이런 방식을 사용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 주인공과 관객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는 영화 속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악마를 숭배하는 신흥 종교이든, 집에 깃든 원혼이든, 등장인물 중 누군가의 뒤틀린 심리든 이 기괴한 일들을 일으킨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밝혀 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장산범>이 간과한 점

이 영화 <장산범>의 초중반부가 지루한 이유는 이런 공포물 특유의 구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처음부터 ‘장산범’이란 무서운 존재의 이미지를 선명히 심어 주지 못하기 때문에 관객을 긴장시키지 못합니다. ‘장산범’이 등장하는 프롤로그가 있긴 하지만 장산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깃들어 있는 동굴을 소개하는 데 그칩니다. 따라서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동굴 근처에 갈 때만 긴장하게 되지요. 또한, 굳이 안 가도 되는 동굴로 등장인물들을 보내느라 다소 뜬금없고 억지스러운 설정까지 덧붙어 있어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 희연이 동굴 여행을 왔다든지 아니면 동굴 바로 근처에 생활 터전을 잡았다든지 하는 식의 설정이 아닌 이상, 지금 정도의 프롤로그는 효과가 떨어집니다. 장산범의 수법이나 기괴한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후반부에서 서스펜스와 스릴이 괜찮게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도, 장산범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관객에게 완전히 알려진 다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영화의 미스터리 구성이 공포의 대상인 장산범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주인공 희연의 과거사와 트라우마를 하나씩 천천히 드러내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르 특성상 이 영화에서 관객이 관심을 두는 것은 장산범의 정체지, 희연이 과거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가 아닙니다. 만약 이 영화가 희연의 심리 상태를 공포의 근원으로 삼는, 일종의 사이코 스릴러라면 지금처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희연의 사연은 지금보다 훨씬 간단히 압축해서 보여 주고, 장산범에 대한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는 데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감독이 전작 <숨바꼭질>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비판, 즉 ‘도대체 손현주는 경찰에게 왜 신고를 안 해서 화를 자초하나?’라는 질문을 의식한 듯한 설정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는 아예 희연이 과거에 겪은 일 때문에 경찰 자체를 불신하게 된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그녀가 경찰에 연락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해 버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이렇듯 개인적인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 정도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나도 등장인물처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개연성에 대한 질문이 안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억지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애초의 발상이 좋다고 그것을 고수하며 어떻게든 말이 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최선의 장면을 위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찾는 노력을 끝까지 해야 합니다. 영화의 목표 — 장르적 쾌감이든 주제 의식이든 — 에 맞춰 모든 요소를 효과적으로 조직해 가면서요. 좋은 감독이 될 가능성을 보여 준 신예로서, 허정 감독이 앞으로 더 나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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