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의 내일 Bacalaurea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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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진진

2017. 8. 10. 개봉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너무 강하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것이 쌓여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아이에게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자신의 인생이 있는 법인데, 거기에 부모가 늘 개입하게 되면 문제가 안 생길 리 없겠죠.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딸의 장래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루마니아의 의사 로메오(아드리언 티티에니)에게 고교 졸업반인 딸 엘리자(마리아 빅토리아 드라구스)는 자랑거리이자 희망입니다. 이미 영국의 2개 대학에 입학 허가와 장학금까지 받아 놓은 상태로, 졸업 시험만 잘 치르면 되는 상황이죠.

그런데 엘리자는 시험을 앞둔 등굣길에서 괴한의 공격을 받고 다칩니다. 로메오는 엘리자가 입은 상해와 심리적인 타격도 신경 쓰이지만, 무엇보다 이 사건이 엘리자의 졸업 시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휩싸입니다. 이를 알아챈 사건 담당 경찰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딸의 앞길을 열어 주고 싶은 아버지

영화는 딸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로메오의 며칠을 담습니다.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불안해하는 그의 모습은 89년 루마니아 혁명 전후에 청년기를 보낸 이후 사회의 중추로 성장한 세대의 초상입니다. 이들은 젊은 시절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조국에 남아 열심히 살았지만, 그들의 나라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예전에 내렸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할 정도로요. 그래서 자식 세대만큼은 더 많은 기회를 누리게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나라 386세대를 떠올리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들 역시 젊은 날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대부분 자신이 싸웠던 기성 세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까요. 2000년대 이후 조기 유학과 대안 학교 붐을 주도하면서 자식 세대가 좀 더 좋은 교육을 받기를 원한 것도 유사한 부분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 크리스티안 문쥬는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시절의 낙태금지법의 폐해를 다룬 <4개월, 3주… 그리고 2일>(2007)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국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의 소녀들>(2012)은 루마니아 한 수녀원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로서, 역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영화 모두 자기 나라의 치부를 선정적으로 다뤄서 서구 영화계의 시선을 끈 것이 크게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영화제들은 자기네와 다른 이국적인 삶을 그린 영화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이야기의 출발로는 좋은 소재를 선택했지만, 그것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를 언급하는 데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은 다릅니다. 전작에서 아쉬웠던 주제의 보편성이란 문제를 잘 해결한, 감독의 최고작이니까요.

극의 중반까지는 전작들처럼 루마니아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데 주력합니다. 이번에 감독이 주목한 것은 ’인맥을 통한 청탁’입니다. 서로 편의를 봐 주면서 각자 이익을 챙기는 부패의 고리로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로메오가 자신의 모든 노력과 계획이 어그러져 버린 상황에서 맞이하는 선택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좀 더 보편적인 언급을 시도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

많은 부모가 자기 자식보다 판단력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합니다. 더 정도가 심하면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하죠. 큰 성공을 거두었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사실, 자녀의 판단력이 부모보다 낫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은 많을 수 있어도 인생 경험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자녀의 판단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자녀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부모 탓이라며 불평할 수 있는 빌미만 줄 뿐입니다.

그보다는 자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자기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니까요. 인간사의 많은 문제는 — 독재 정권이나 부정부패 같은 사회적인 문제부터 이웃 간의 사소한 다툼 같은 개인적인 갈등까지 — 사람들이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데서 생깁니다.

신체적 성장을 마치고 법적으로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자신의 결정에 당당히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모습 말이죠. 그럴 때에야 부모와 자녀 사이에 진정한 소통의 다리가 놓일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엘리자의 내일>에서 로메오가 한 일도 그런 것입니다. 로메오가 지난 며칠동안 한 고심과 분투는 엘리자와의 사이를 점점 벌어지게 했을 뿐이지만, 고작 반나절 만의 깨달음과 변화는 엘리자에게 행복한 웃음을 되찾아 줍니다. 자기가 벌여 놓은 골칫거리들에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바로 로메오가 졸업하는 딸에게 해 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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