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그레이티스트: 무하마드 알리 평전 – 월터 딘 마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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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게

<더 그레이티스트: 무하마드 알리 평전>,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 이윤선 옮김, 돌베게 펴냄 (2017. 5. 29.)

저는 무하마드 알리가 마지막으로 링에 올랐던 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합을 TV 중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 경기를봤던 유명 권투 선수들이라고 해 봐야 알리 은퇴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슈거 레이 레너드나 마빈 해글러 같은 미들급 강자들, 무지막지한 기량을 선보였던 헤비급의 마이크 타이슨 정도가 기억납니다.

딱히 복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동안 무하마드 알리에 대해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유명한 말, 흑인 민권 운동 과정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사실, 세계 최고의 복서였지만 은퇴 후 파킨슨 병으로 고생했다는 것 정도만 상식으로 알고 있었을 뿐이죠. 작년 여름에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에도 ‘아직 살아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감흥 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 <더 그레이티스트: 무하마드 알리 평전>은 알리의 권투 선수 경력에 초점을 맞춰, 그의 신념과 불굴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체 4부로 이뤄져 있는데 잘 짜인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구성과 권투 시합에 대한 박진감 있는 묘사가 돋보입니다. 본문 중간중간에는 현장감이 뛰어난 스틸 사진들이 다수 실려 있어 생생함을 더합니다.(개인적으로는 이 사진들만으로도 책을 소장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강렬한 서문은 단숨에 독자를 빨아들입니다.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기 전 캐시어스 클레이 이던 시절, 당대 최강으로 손꼽히던 소니 리스턴을 꺾고 세계 챔피언에 오르던 날의 상황을 복싱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저처럼 무하마드 알리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던 사람까지도 더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요.

6라운드가 끝나자 던디는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하라며 클레이를 안심시켰다. 계속 나비처럼 날아가서 계속 벌처럼 쏘라는 말이었다.
클레이는 링 건너편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리스턴을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클레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머리 위로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링 주위를 펄쩍펄쩍 뛰었다. 소니 리스턴이 마우스피스를 뱉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격투 세계가 망연자실했다. 챔피언 리스턴이 시합을 중단했다.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는 이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을까? 어떤 사람들은 조작일 거라고 말했다.
클레이의 탈의실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기자들은 큰 소리로 질문을 던지며 들어가려고 했다. 원기가 넘치는 클레이는 자신이 왕이라고 전 세계에 소리 지르고 있었다.
탈의실에서 세컨드가 리스턴의 얼굴에 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려고 애썼다. 상처는 진짜였다. 땀과 피와 고통도 진짜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리스턴 아니 그 어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 녀석 누구야?” 리스턴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p. 28~29에서 인용)

1부 ‘캐시어스 클레이’는 유년 시절부터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기 전까지를 다룹니다. 권투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미 성실한 복서였던 캐시어스 클레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프로 복서로서 성공적인 첫 출발을 합니다.

그러나 단숨에 사람들의 주목을 끈 이 복싱 유망주는 인종 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자란 흑인 청년이었습니다. 피부색 때문에 당하는 온갖 굴욕을 목격한 그로서는 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에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특히 그는 맬컴 엑스와 그가 소속된 이슬람 국가(Nation of Islam)의 흑인만의 국가를 건설하자는 급진적인 주장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캐시어스 클레이에서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하게 된 계기입니다. 그는 서문에 나왔던 소니 리스턴과의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직후, 자신이 이슬람교로 개종했으며 이름도 무하마드 알리라고 개명하겠다는 사실을 발표합니다.

2부 ‘무하마드 알리’에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권투 선수로서는 승승장구했지만 그의 이슬람 개종과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한 공격적인 입장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백인은 물론 대다수의 온건한 흑인들도 그랬습니다. 그런 여론 때문에 알리는 꼼짝없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지요.

1967년 베트남전 입대 거부로 재판을 받게 되자, 세계권투연맹 WBA는 이를 빌미로 그의 챔피언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신체 능력이 최정점이던 25세부터 28세까지 3년 동안 권투 선수로서 링에 설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는 대학가에 강연을 다니며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고 연극 무대에 서기도 하는 등 훌륭하게 처신하며 흑백을 막론하고 모든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결국 알리는 28살이 되던 1970년에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릅니다. 평전의 저자 월터 딘 마이어스는 알리의 복귀에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변화한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1968년에 마틴 루서 킹이 암살당하면서 흑인 민권운동에서 보다 과격한 주장들이 힘을 얻었고, 베트남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거죠.

3부 ‘우리의 챔피언’에서는 알리가 링에 복귀한 후 다시 세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요약합니다. 프로 데뷔 후 첫 패배를 안긴 조 프레이저와의 대결 및 재대결, 자기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젊은 챔피언 조지 포먼과의 타이틀전 같은 세기의 시합이 박진감 넘치게 서술됩니다.

이어지는 4부 ‘경력이 끝나다’에서는 알리의 마지막 시합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평생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굴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회고합니다. 저자는 그가 링 위에서는 물론, 삶의 모든 자리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살아왔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 영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가드를 완전히 내리고 빠른 스텝을 밢으며 상체를 흔드는 특유의 스타일은 대번에 보는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하지만 이런 영상물만으로는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로 꼽히는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책은 무하마드 알리의 삶 전체를 시시콜콜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서슴없이 조롱하고 몇 회에 KO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떠버리 권투 선수의 내면에 흐르고 있던 신념과, 그것을 실천하고자 했던 강인한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던 알리의 모습은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 앞에서 좌절하고 이런 저런 유혹에 흔들리며 고민하는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면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한 번 일어나서 도전해 보고 싶어지지요. 알리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보다 훨씬 전에 링에서 물러났지만, 평생 동안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며 살았던 그의 삶은 이렇게 우리 마음 속에서 부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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