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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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2017. 6. 29. 개봉

봉준호 감독의 여섯번째 장편 <옥자>가 공개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넷플릭스로부터 5천만불 전액 투자를 받은 이번 작품은 상영 방식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요.

사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작품은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주요 극장 체인에서 상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논쟁의 규모가 다소 과하게 커진 감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감독의 신작을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죠.

할아버지(변희봉)와 함께 사는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는 다국적 대기업 미란도로부터 분양받은 슈퍼 돼지 옥자와 함께 10년을 보내 왔습니다. 덩치는 산더미 같지만 정 많고 순한 옥자는 미자에게 가족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미란도에서는 애초부터 10년 기한 국제 이벤트용이었던 옥자를 계약 기간이 끝나자 회수해 가 버립니다. 그 때까지 할아버지가 옥자를 회사로부터 샀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던 미자는 옥자를 되찾기 위한 여정에 나섭니다.

<옥자>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공개되기 전의 기대감과 화제성에 비하자면 미지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스크린 수 자체가 100개 내외로 적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흥행 수치를 내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영화 자체도 호불호가 확실히 갈려서, 이만하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라는 반응과, 극장에서 못 봐서 아쉬울 정도의 명작은 아니라는 얘기가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아쉽다고 생각한 쪽입니다. 그동안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좋아하고 높이 평가했던 이유가 장르적 이야기가 주는 쾌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실히 해냈다는 점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인터뷰들을 봐도 애초부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장르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좀 더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이야기의 재미와 장르적 완성도 문제를 자세히 거론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봉준호 감독 정도 되는 사람이 그런 쪽의 고민과 성찰을 하지 않았을리 없으니까요. 모든 것을 고려했음에도 그의 선택이 이런 것이라면 제작 의도를 존중해 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가 잘 만들어져 있느냐를 살펴보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 인터뷰들을 참고했을 때 감독이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동물을 참혹하게 도살해서 상품화하는 일에 대해 무신경한 세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 풍조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감독은, 옥자라는 생명체를 각각 인생의 동반자-이념적 상징물-상품의 원재료라고 생각하는 미자-ALF-미란도 그룹을 등장시킵니다.

완성도 높은 미자와 옥자의 교감, 그러나

먼저, 미자의 관점은 관객에게 가장 호소력이 강합니다. 도입부에서 함께 정다운 시간을 보내는 옥자와 미자의 모습, 그리고 위험에 처한 미자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옥자를 인상깊게 다룬 액션 장면 등은 이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된 것입니다.

가상의 슈퍼 돼지 옥자의 디자인에 신경쓰고 질감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 것 역시 옥자를 향한 미자의 감정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합니다. 이런 부분들은 감독의 주제 의식이 확실히 잘 반영된 것으로서, 확실히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정서적 깊이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나머지 두 축을 이루는 ALF와 미란도 그룹을 소개하고 다루는 방식은 미자와 옥자의 관계만큼 심사숙고하지는 못한 듯 다소 평범하고 사려깊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ALF의 경우, 감독은 ‘부족한 부분은 있지만 이상적인 가치를 위해 싸우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했다’는 정도의 우호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만약 그런 의도가 깔려 있지 않았다면, 이들이 극의 여러 주요 전환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쿠키 영상을 통해 따로 코멘트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감독에게 이들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아닙니다. 실수도 하고 허술하지만 장점도 분명히 있는 해학과 연민의 대상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감독의 입장에는 동의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고, 누군가 싸우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날 수 없으니까요.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옥자가 강원도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취한 행동이 선을 넘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슈퍼 돼지 알폰소에게 성적으로 공격당하는 옥자의 모습을 몰카로 촬영하고, 이를 공개함으로써 미란도의 만행을 폭로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습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옥자가 겪는 수난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지만, 옥자가 영화 속에서 사람과 유사한 인격체로 묘사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강간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2차 가해’나 다름 없는 장면이었거든요.

감독은 이런 부분이 별로 거슬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대신, ALF에게 우리나라 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이미지를 덧씌워 그들의 이상과 열정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 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미란도의 용병들에게 붙잡히는 ALF의 모습에 슬로모션을 걸고 애상적인 음악을 깔아 감상적으로 보여 준 것은 그런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입니다.

감독이 보는 현대 자본주의는?

미란도 그룹 같은 경우에는 묘사가 피상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철두철미하게 움직이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감독 나름의 통찰은 없습니다. 이미지 조작이나 권력 투쟁에 몰두할 뿐 경영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는 세습 자본가들의 행태에 대한 식상한 풍자만 있을 뿐이죠.

미란도는 다국적 기업이면서도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진짜’ 자본가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합니다. 돼지를 6, 7개월만 키워 시장에 출하하는 게 일반적인 축산업계 관행임에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10년짜리 슈퍼 돼지 콘테스트를 엽니다.(물론 이것은 감독이 미자-옥자의 10년 짜리 관계를 위해 설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쌍둥이 자매 루시-낸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간의 경영권 분쟁도, 자본주의의 양면을 보여 주려고 했다는 감독의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란도 그룹이 GMO 슈퍼 돼지를 만들고 공장식 축산을 함으로써 어떤 금전적 이득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감독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 이상으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도살 공장의 풍경에 대한 감상은 ‘참으로 탐욕스런 자본주의가 모든 걸 망치는군’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동물을 이렇게 끔찍하게 취급하고 있다니’에 머물고 마는 것입니다.

이 영화 <옥자>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보여 주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제 의식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게 영화가 구축되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옥자의 캐릭터 디자인과 미자가 옥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형상화했지만, ALF와 미란도 그룹을 그리는 방식에서는 예술가 다운 사려깊음과 통찰력이 부족했습니다. 보다 예리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해서 구축했어야 할 요소들을 나이브하게 처리한 바람에, 메시지가 약화되고 극의 집중도가 떨어진 점이 참 아쉽습니다.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지 않기로 했다면, 메시지를 더 갈고닦고 그것의 내적 논리를 더 꼼꼼하게 챙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의도가 너무 뻔한 몇몇 시각적 설정과 디테일을 챙기는 대신에요. 이 영화가 미국 기준으로 TV-MA(18세 이상의 성인 대상 프로그램) 등급을 받았지만, 성인을 위한 동화 혹은 아동 영화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것을 되새겨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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