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발광 17세 The Edge of Seventee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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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2017. 6. 28. 개봉

한 개인의 온갖 부끄러운 흑역사는 거의 학창 시절에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제 삶을 되돌아봐도 그렇습니다. 신체적 성장이 마무리되고 점점 자의식이 높아져 가는 것에 비해서, 인생 경험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편협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결과였죠.

요즘엔 흔히 ‘중2병’이라고 부르는 이 사춘기 증상은 사람마다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릅니다. 여러가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질 때에야 이 증상이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게 잘 안된 상태에서 나이만 먹으면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괴로워집니다.

이 영화 <지랄발광 17세>의 주인공 네이딘(헤일리 스테인펠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인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자신이 외톨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모두에게 호감을 받는 한 살 위의 오빠 대리언(블레이크 제너)과 자기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죠.

그런 그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것은 까탈스러움을 잘 받아 준 아버지와, 단짝 친구 크리스타(헤일리 루 리처드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열세 살 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크리스타가 네이딘에게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었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런 그녀가 밉살맞은 오빠 대리언과 사귀기기로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네이딘은 크리스타마저 오빠 편이 돼 버렸다는 생각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네이딘의 삶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입니다.

주인공의 끝없는 방황

인기 없는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런 류의 하이틴 영화들은, 흔히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봐 주는 다른 이성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문제가 해결되는 식의 로맨스 플롯을 따라갑니다. 초반 인물 설정으로 볼 때, 이 영화도 역시 그런 식의 전개가 이어질 것이 충분히 예상되지요.

하지만, 정작 관객들이 주로 보게 되는 것은 네이딘의 끝도 없는 방황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대단히 뛰어난 유머 감각과 관찰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겐 더 멋진 남자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번번이 잘못된 결정과 경솔한 행동을 거듭합니다. 이런 과정이 쓴웃음을 짓게 하는데, 우리말 제목으로 붙인 ’지랄발광’이란 말이 정말 딱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켈리 프리몬이 이렇게 자신의 주인공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면서 끝장을 보게 만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녀의 삶이 왜 이렇게 비뚤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명확히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일반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처럼 자신의 가치를 알아 봐 줄 이상적인 애인과의 결합이 모든 것을 해결해 버리면, 정작 네이딘의 진짜 문제가 뭐였는지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해 볼 시간은 없어지니까요.

자칫 평범해 보일 수도 있었던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이만큼 가슴 찡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네이딘의 뻘짓을 끝까지 보여 준 감독의 이런 뚝심 때문입니다. 그녀가 얻은 깨달음은 그렇게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고생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습니다.

헤일리 스테인펠드는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1)로 인상 깊은 데뷔를 했고, 우리 관객에게는 <비긴 어게인>(2013)에서 마크 러팔로의 딸 역할로 좀 더 익숙한 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 맡은 네이딘이라는 역할은 자신의 평소 이미지와 비슷하긴 하지만 좀 더 자의식이 강한 인물인데다, 극의 특성상 전체를 혼자서 끌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감정을 무리 없이 잘 소화해낸 것이 돋보입니다.

현재의 인간 관계에서 시작하자

인생에서 무엇인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남 탓을 하곤 합니다. 내가 이 사람의 가족만 아니었더라면, 그 사람이 내 업무 파트너로 오지만 않았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지요. 좀 더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사람, 내 단점보다는 장점을 특별하게 알아 봐 줄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입맛에 딱 맞게 행동하며 우리를 기쁘게 해 줄 ‘소울 메이트’가요. 하지만 마냥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거나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이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여러 조건들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인생의 목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자신이 이제껏 눈치채지 못한 것들을 되짚어 보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쉬운 길입니다.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상대의 배려, 나에 대한 감정을 곱씹어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까지 해 봤는데도 이 사람들이 정말 내 감정을 착취하고 나를 이용하기만 한다 싶으면, 그 때 가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네이딘이 ‘중2병’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 역시 그랬습니다. 언제나 자기 감정에만 지나치게 충실하던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상황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변화는 남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할 때 더욱 빨리 찾아 온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지랄발광 17세>는 청소년 관객 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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