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 Elle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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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픽쳐스

2017. 6. 15. 개봉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미지 혹은 관념은 과거에 고착돼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잘 나간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학업과 일상을 돌보고 가사 일을 담당하는 것은 여성의 몫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일하는 여성들은 아무리 직장 일을 마치고 피곤에 절어 있어도 그녀에게 치대는 다른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받아 들여집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손해 보는 것은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추구하거나 꿈꿀 겨를이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그것은 금기시 됩니다. 가장 사적인 욕망으로서 프라이버시를 보장 받아야 할 성욕조차 그러니까요. 성적 욕망을 자유분방하게 분출하는 여성에게 징벌을 내리는 문화적 관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이 영화 <엘르>의 주인공 미셸(이자벨 위페르)의 경우는 확실히 다릅니다. 파격적인 성폭행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 그녀는, 처음엔 그저 가냘픈 중년의 피해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점차 그녀의 일상과 인간 관계가 소개되고 그녀의 주변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수완이 드러나면, 그녀가 얼마나 강인하고 주체적인 인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게임회사 CEO인 그녀는 지지부진한 프로젝트를 자기 뜻대로 뚝심있개 밀어 붙이고, 자기 어머니-전 남편-아들 등 가족들과 밀당을 통해 주도권을 확보하며, 섹스 파트너를 고르는 문제에 있어서도 자기 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합니다.

그러니, 이런 그녀가 영화 속에서 겪는 두 가지 차원의 강간 사건 – 한 번은 육체적이고, 다른 한 번은 회사 인트라넷 상에서 벌어진 – 을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하고, 심지어 완전히 그 의미를 역전시켜 버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 폴 버호벤은 언제나 신체 훼손이란 설정과 가학적 묘사를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져 왔습니다. 이것은 <로보캅>(1987), <원초적 본능>(1992), <스타쉽 트루퍼스>(1997) 같은 할리우드 흥행작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대표 감독이던 시절에 만든 작품인 <사랑을 위한 죽음>(Turkish Delight)(1973), <포스맨>(The Fourth Man)(1983) 같은 영화에서도 두드러지게 표현됐던 일생의 화두지요.

이번 영화에서 주인공 미셸이 가학과 피학을 극단적으로 넘나들며 주도권을 확보하는 모습, 다층적 인간 관계를 겹겹이 쌓아 올리고 그것을 주요 씬이나 컷에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연출력은 그런 연륜과 오래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감독의 비전이 구체화되는 데에는 주연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의 소름끼치는 연기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어떤 순간이든 절대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는 미셸이란 캐릭터의 존재감을 이만큼 단단하게 표현한 것은 이자벨 위페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녀의 표정은 무심한 듯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을 복잡한 계산과 격렬한 감정은 보는 사람을 긴장하게 합니다. 그녀가 표정을 조금만 바꾸거나 누군가에게 시선을 주기만 해도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하게 되거든요. 그러다가 그녀가 취하는 행동에서 그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특히 지하실에서 이웃집 남자와 사도-마조히즘에 가까운 관계를 갖고 난 후, 차오르는 오르가즘을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신음을 마음껏 내지르는 장면은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복합적인 텍스트입니다. 성폭행범의 정체를 찾고 징벌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이기도 하고, 부르주아의 가족 생활과 사랑을 솜씨 좋게 풍자하는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며, 과거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의 심리극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든 상황을 주도적으로 풀어가는, 일종의 신화 속 여신과도 같은 주인공 미셸을 통해 느끼는 대리 만족이 클 것 같습니다.

미셸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지만, 그 나이 또래 보통 여성이 갖는 욕망과 스트레스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아주 빈틈없는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이기적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항상 희생만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가 답답한 우리나라 여성 관객들에게 통쾌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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